‘혹하다 땅친다’… 신종 보이스피싱 주의보
입력 2010-09-08 21:15
주부 김모(46)씨는 지난달 말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현금카드를 보내면 ‘햇빛론’ 대출 전용 카드로 바꿔주고 2000만원까지 빌려준다는 광고였다. 발신자는 ‘햇빛론 캐피탈’로 인터넷 사이트도 있었다. 김씨는 햇빛론이 싼 이자로 돈을 빌려주는 대출상품이라고 들은 적이 있는 듯했다.
급전이 필요한 그는 더 생각하지 않았다. 업체에 은행 계좌번호를 알려주고 택배로 현금카드를 보냈다. 하지만 대출은커녕 카드는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에 이용되고 버려졌다.
서민 전용 대출상품 ‘햇살론’을 빙자해 현금카드와 통장 등을 가로채는 신종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들 사기는 다른 금융사기에 사용할 은행 계좌를 확보하려는 술수여서 2, 3차 피해로 확산될 우려가 크다.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8일 햇살론과 이름이 비슷한 가짜 대출업체를 내세워 현금카드와 통장을 가로채고 전화금융사기에 이용한 혐의(사기 등)로 이모(45)씨 등 재중동포 2명을 구속했다.
이씨 등은 지난 한 달 동안 ‘햇빛론 캐피탈’이라는 이름의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하며 김씨 등 10여명에게서 통장과 현금카드를 받았다. 이어 이 통장으로 다른 보이스피싱 사기 피해자의 돈을 송금 받아 현금카드로 인출했다.
이들은 ‘현금카드를 보내면 칩을 갈아 끼워 햇빛론 대출 전용 카드로 바꿔주겠다’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무작위로 발송한 뒤 은행 계좌번호를 알아내고 카드 등을 넘겨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2006∼2008년 입국한 이씨 등은 중국에 본부를 둔 사기단의 말단 조직원으로 전화금융사기에 쓸 은행 계좌를 확보하고 돈을 인출하는 역할을 맡았다. 사기단이 국내 피해자에게 해당 은행 계좌로 돈을 입금 받으면 이씨 등은 8%를 자신들 몫으로 떼고 나머지 금액을 조직 송금 담당자에게 보냈다. 사기범들은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범행에 사용한 현금카드는 즉시 폐기했다.
햇살론은 신용등급이 낮고 소득이 적은 사람에게 정부가 저리로 자금을 빌려주는 상품이다. 햇빛론은 햇살론과 무관하고 정식 대출상품도 아니지만 혼동하는 사람이 많아 사기 미끼로 악용되고 있다.
지난달에는 ‘햇빛론 카드사’라는 허위 업체를 만들어놓고 “100만∼2000만원을 즉시 대출해주겠다”고 속여 조모(29)씨 등 43명에게서 현금 300만원과 현금카드 32장, 통장 11개를 가로챈 혐의로 재중동포 장모(33)씨 등 2명이 경찰에 구속됐다.
경찰은 집중 단속으로 대포통장(타인 명의 불법 통장)을 사들이기 어려워지자 가짜 대출업체 사이트로 피해자를 유인하는 사기단이 늘고 있다고 밝혔다. 대출을 위해 현금카드나 통장을 보내 달라는 금융기관은 없다. 경찰 관계자는 “보이스피싱 조직이 국내 사정에 따라 사기 수법을 바꿔가고 있다”며 “속아서 통장을 건넨 피해자라도 대포통장을 만들어준 셈이어서 처벌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강창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