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노석철] 반칙에 둔감한 사회

입력 2010-09-08 17:54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 ‘돈 없고 힘없는 서민도 공평하게 기회를 갖는 사회’ ‘돈과 권력을 가진 자가 반칙하지 않는 사회’.

이런 의미로 청와대가 들고 나온 ‘공정한 사회’는 서민들이 꿈에 그리는 세상이다. 어떻게 그런 압축적인 표현을 생각해냈는지 무릎을 치게 된다. 정치 경제 사회 등 어느 분야에 적용해도 딱 들어맞는 말이 ‘공정한 사회’ 말고 또 있을까. 이명박 대통령은 “권력을 가진 자, 힘을 가진 자, 잘사는 사람이 공정사회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 권력과 이권을 같이 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시대착오적”이라는 말로 연일 의지를 다지고 있다. 보수정권에서 ‘기득권자’라는 얘기까지 거침없이 하는 걸 보면 적잖은 변화가 기대된다. 다만 이 구호가 난데없이 불쑥 튀어나왔다는 느낌에 뒷맛이 개운치 않다. 남의 잘못을 꾸짖으려면 자신의 허물이 없어야 말에 힘이 실린다. 정부도 반칙에 가담하거나 묵인하는 건 없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현 정부는 줄곧 측근 인사 논란에 휩싸였다. 대선캠프에 있었다는 사람들이 어찌 그리 많은지 공기업과 산하단체에 사장과 감사 등 직책을 달고 줄줄이 낙하산을 탔다. 민간 금융사와 방송사 사장 자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통령이 공직 임명권을 갖고, 통치철학을 실행하기 위해선 공직에 어느 정도 측근 기용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실력이 아니라 정권 핵심인사들과의 친분이 최우선 임명 기준이 돼서는 곤란하다. 게다가 정권의 전리품처럼 여기는지 이런 자리배분을 놓고 권력 암투까지 공공연하게 벌어졌다. 선거 때 잠시 줄을 잘 섰다는 이유 하나로 연봉 1억원이 넘고 운전기사 딸린 고급차량까지 나오는 자리를 사냥하듯 챙긴다면 피해는 해당 기업이나 직원들에게 돌아간다. 그들은 평생 열심히 일하는 게 한번 줄 잘 서는 것만 못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그런 무분별한 측근 기용은 정권 초기 ‘고소영’ ‘강부자’ 내각이란 비판을 자초했고, 이번 청문회 파행도 그런 이유가 컸다.

교육계로 눈을 돌려 학내 분규가 끊이지 않는 상지대를 보자. 공금횡령과 입시부정 혐의로 구속됐던 김문기 전 이사장 측 인사들이 재단 정이사로 복귀했다. 학생과 교수들이 천신만고 끝에 학교를 정상화했으나 결국 김 전 이사장 측이 재단 접수를 목전에 두고 있다. 현 정부에서 구성된 사학분쟁조정위원회가 그들을 정이사에 포함시켰고, 안병만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이주호 장관 취임 직전 이사진 구성안에 사인해버렸다.

광운대 대구대 덕성여대 등 전국 곳곳에서 비리재단 복귀를 막기 위한 교수·학생들의 눈물겨운 사투가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눈감고 있다. 아무 근거 없이 은행장들을 바둑돌 놓듯 바꾸는 정부가 왜 사학재단 분규는 모른 체할까. 몇 푼 들여서 사학재단을 세운 뒤 곶감 빼먹듯 돈을 횡령하다 걸려도 아무 문제를 삼지 않는다면 그건 더 이상 배움의 터전이 아니다.

더 확대해보면 공교육도 공정한 사회의 걸림돌이다. 황폐화된 공교육 때문에 초등학교부터 엄청난 사교육비를 쓰느라 빚을 져야 하는 서민들은 좌절한다. 학교 수업만 들어서는 도저히 부유한 집 친구들을 따라잡을 수 없는 가난한 학생들에게 애초부터 공정한 기회는 먼 얘기다. 어린 학생까지 돈이 경쟁력을 좌우하도록 방치하는 것은 국가의 직무유기다. 그런데 현 정부에서 공교육이 살아났다고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지금 거론한 것은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반칙과 불공정 게임의 극히 일부분이다. 이는 현 정부 탓만은 아니다. 과거 정부에서부터 관행처럼 답습해왔고, 불가항력이라고 지레 포기한 채 손놓고 있었던 게 대부분이다. 그래서 뜯어고치는 데 시간과 품도 많이 들 수밖에 없다. 차라리 정권 초기에 ‘공정한 사회’란 국정 어젠다를 내놨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지만 지금 꺼낸 것 자체도 반가운 일이다. 진정성과 의지만 있다면 정권 하반기 2년여 시간이 결코 짧지는 않다.

노석철사회부 차장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