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적당히 해서는 안 될 남북관계
입력 2010-09-08 19:26
이명박 대통령은 7일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와의 조찬회동에서 “남북관계도 건강한 관계가 돼야 한다”면서 “적절히 해나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최근 북한 수해 인도적 지원이 이뤄지려는 참에 나온 이 발언은 대북정책 변화를 시사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어떤 정책이고 고정불변일 수는 없지만 광복절 경축사에서 뜬금없이 제시한 통일세처럼 이번에도 중요한 정책 변화가 밥 먹는 자리에서 시사된 것은 우선 방법 면에서 부적절하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8일 국회에서 천안함 출구전략을 생각하지 않고 있으며 대북정책 기조는 불변이라고 답변했지만 장관보다 대통령 말에 귀를 기울이는 건 당연하다.
정부는 출범과 함께 ‘비핵-개방-3000’이라는 대북 조건부 지원 정책을 내걸었다. 그러나 금강산 관광객 피살에 이어 천안함 사건으로 북한의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 없이는 관계 진전이 어려운 상황이 됐다. 이 대통령은 5월 24일 전쟁기념관에서 “더 이상의 교류·협력은 무의미하다”고 선언했고, 유엔에서 북한제재를 요구하는 외교전을 벌였다. 일주일 전에는 미국의 대북 추가제재가 시작됐다. 이런 마당에 수해 지원을 구실로 대북정책을 ‘건강하고 적절하게’ 바꾸겠다니 그렇다면 그동안 대북정책은 적절하지 못했다는 건가. 심각한 자기모순 앞에 국민은 혼란스럽고 미국은 황당해질 터이다. 이러고서 어떻게 국제사회에 대북공조를 요구할 수 있겠나.
대북원칙을 슬그머니 바꾸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대통령 선거에서 대북정책을 보고 투표한 국민이 많다. 대통령이라고 해서 임의로 바꿀 사안이 아니다. 국론을 만들기 위한 합당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만약 이런 식으로 대북정책이 바뀐다면 국민여론을 배제하는 것임은 물론 결국 북한의 터프한 협상술에 말려든 결과가 될 것이다.
11월 G20 회의 개최 전에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추진해야 한다느니, 북한의 회의 방해를 막으려면 미리 당근을 주어야 한다는 말들이 정치권에서 나오고 있는 것은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이 대통령 말대로 국민의 수준이 높다. 국민도 지켜보고 있다. 그래서 대북정책은 ‘적당히’ 하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