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조용래] 곤파스 곰파스 콤파스
입력 2010-09-07 17:45
올 우리나라엔 유난히 태풍이 잦다. 최근 한 달 새 뎬무(벼락의 여신), 곤파스(콤파스·컴퍼스), 말로(마노·瑪瑙) 등 3개나 된다. 뎬무와 말로는 남쪽 지방에 많은 비바람을 몰고 왔다가 사라졌고 특히 지난주 10년 만에 수도권을 강타했던 태풍 콤파스는 적잖은 인명·재산 손실을 떠안겼다.
그런데 곤파스와 콤파스, 어느 쪽이 옳은 한글 표기인가. 기상청 관계자에 따르면 영문으로는 ‘Kompasu’이지만 한글로는 곤파스란다. 외국어로 된 태풍 이름 한글 표기는 국립국어원에 자문해 명명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곤파스가 맞는 걸까.
태풍의 영향권에 속해 있는 14개국은 2000년 아시아 태풍위원회를 열고 태풍 이름을 정했다. 나라마다 10개씩의 이름을 자국어와 영문으로 표기해 제출하고 이를 순차적으로 사용하는데, 현저하게 피해를 준 이름은 퇴출된다. 예를 들면 루사(사슴), 매미는 각각 누리(올빼미), 무지개로 교체됐다.
7호 태풍 콤파스는 일본이 이름붙인 것으로 ‘compass(컴퍼스)’의 일본식 발음이다. 일본은 모든 태풍을 별자리 이름으로 채웠는데 콤파스는 남반구에서만 보이는 컴퍼스 별자리를 말한다. 명명 원칙이 자국어 표기이다 보니 compass가 Kompasu(コンパス)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콤파스로 표기해야 옳다.
문제는 일본어 한글 표기에 있다. 원어 발음을 존중한다고 하면서도 현행 일본어 한글 표기 원칙은 초성에 파열음을 쓰지 못하도록 한다. 예컨대 일본 총리 菅直人(Kan Naoto)는 ‘간 나오토’, 東京(Tokyo)는 ‘도쿄’, 千葉(Chiba)는 ‘지바’, 田中(Tanaka)는 ‘다나카’로 쓰는 식이다.
일본어 문자 ‘응(ン·ん)’은 바로 뒤에 p, b 등의 발음이 오면 ‘음(m)’ 소리가 난다. 원음발음 중시 원칙을 적용한다면 곤파스보다 ‘곰파스’가 더 가깝다. 언젠가 지인인 田中는 한국에서 온 우편물에 ‘Mr. Danaka’라고 쓴 것을 보고 크게 당황했다. 그러니 곤파스나 곰파스가 아니라 콤파스가 맞다는 얘기다.
대체 언제까지 구닥다리 표기법으로 일관할 건가. 외래어 표기 원칙을 정하는 국립국어원 산하 정부·언론외래어심의공동위원회부터 거듭나야겠다.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는 것이 글로벌 시대를 사는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이름이 꽃이라 하지 않는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 와서 꽃이 되었다.’(김춘수 ‘꽃’ 중에서)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