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북한 수해에 ‘묻지마 지원’ 안 된다
입력 2010-09-07 17:35
북한이 지난 4일 대한적십자사(한적)에 쌀 자동차 굴착기 시멘트를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한적이 지난달 신의주 수해에 대해 비상식량 생활용품 의약품 등 100억원 규모 지원을 제의하자 필요한 물품을 역제의한 것이다. 금강산 관광객 피살과 천안함 사건으로 관계가 극도로 경색된 상황에서 공식적으로 처음 이뤄지는 교섭이다.
정부는 북한 요구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은 관광객 피살과 천안함 폭침 어느 것도 사과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쌀이 남아 사료로 쓰느니 북한에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런 터에 북한이 수해를 당했으니 정부도 외면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대북 지원을 하더라도 혜택이 수재민에게 돌아가는지 감독할 수 있어야만 지원하는 의미가 있다.
북한이 요청한 품목은 모두 군사용으로 전용할 수 있는 것들이다. 쌀만 해도 군량미로 전용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평소에도 쌀 구경하기 힘든 북한 주민들에게 수해가 났다고 해서 쌀을 배급해 줄 거라고는 믿기 어렵다. 수재민에게는 라면 등 비상식량과 생활용품이 훨씬 필요할 터다. 트럭은 그 자체로 군사용이 되며 굴착기와 시멘트는 수해 복구가 끝난 뒤 군 부대의 진지 구축과 땅굴 파기에 안성맞춤이다. 노무현 정부는 2007년 북한 수해 때 쌀 10만t과 굴착기 50대, 페이로더 60대, 시멘트 10만t, 철근 5000t을 지원했으나 실제 용도와 장비의 행방에 대해서는 확인할 자료가 없다. 그 같은 ‘묻지마 지원’을 또 해서는 안 된다.
일각에서는 11월 G20 회의를 앞두고 남북관계를 안정시켜야 한다며 이번 기회에 대북 지원을 재개하자고 주장하나 이는 돈으로 평화를 사려는 발상이다. 북한이 나포한 대승호와 선원 7명을 돌려보냈다고 해서 감격할 것도 아니다. 당연한 일이다. 피랍 선원에 포함된 중국인 3명 문제가 얼마 전 북·중정상회담에서 거론됐다. 쌀 지원은 민간단체에 맡기고 정부는 비상식량과 생활용품 의약품을 지원하는 정부 원래 방침대로 가야 한다. 수해 지원을 이유로 대북 원칙을 깨뜨려서는 안 된다. 우리가 천안함 희생자들을 망각하고 대북 지원을 하게 된 걸 반긴다면 공정(公正)한 사회라고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