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엄기영] 北 지원요청 없다던 통일부의 거짓말

입력 2010-09-07 22:10

거짓말과 신뢰의 상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딸 특혜 채용으로 온 나라가 들끓고 있는 이유다. 겉은 다르지만 속은 비슷한 일이 통일부에서도 발생했다.

통일부가 수해지원 차원에서 쌀과 복구 장비를 보내 달라는 북측의 요청을 숨긴 게 들통났다. 북측은 지난 4일 대한적십자사 앞으로 보낸 전통문에서 쌀과 수해 복구에 필요한 물자·장비들을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한적이 지난달 31일 100억원 상당의 긴급 구호용품을 보내겠다고 한 데 대한 답변이다.

그러나 통일부는 7일 오전 언론 보도를 통해 이런 사실이 드러나기 전까지 북측이 전통문을 보낸 적이 없다고 거짓말했다. 천해성 통일부 대변인은 6일 기자들이 한적의 수해복구 지원 제안에 대한 북측의 반응이 없느냐고 묻자 “아직 없다”고 했다. 7일에도 통일부 당국자는 전통문을 받은 사실을 한적에 알렸느냐는 질문에 “비공개로 협의 중”이라고 했다. 그러나 한적은 이날 오전까지도 전통문의 존재를 몰랐다.

문제가 불거지자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기자실을 찾아와 “내부적으로 검토하는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알리지 못했다. 사실을 왜곡할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남북관계의 민감한 사안은 경우에 따라 언론과 국민들에게 바로 알리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쌀과 수해복구 장비를 보내 달라는 북측 전통문은 거짓말까지 동원하며 감출 만한 사안이 아니다. 정부의 불필요한 사실 감추기가 큰 화를 부른다는 것은 천안함 침몰 사건 때 충분히 경험했다.

정부의 거짓말은 국민들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예나 지금이나 정부가 기자들에게 거짓말하는 것은 여론을 호도하거나 통제하려는 목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대북 쌀 지원은 민간 차원이든 정부 차원이든 민감한 사안이다. 따라서 눈치보고 숨기기보다는 투명하게 논의돼야 할 사안이다. 거짓말하고 신뢰를 깨는 것은 요즘 화두인 ‘공정한 사회’와도 한참 거리가 멀다.

엄기영 정치부 eo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