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박병광] FTA의 정치학을 다시보자
입력 2010-09-07 17:35
지난주 외교통상부는 페루와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관한 협상 타결 소식을 발표했다. 1년5개월의 협상 끝에 FTA를 타결함으로써 한국은 남미 시장에 대한 교두보 및 자원시장 확보라는 의미 있는 성과를 얻게 됐다. 오늘날 국제경제 질서는 치열한 경제전쟁과 더불어 FTA 등을 통한 상호 협력과 경제 개방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FTA는 단순히 경제적 행위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고도의 정치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에서 FTA의 정치학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나라는 중국이다. 현재 중국은 FTA 협상을 통해 중동, 아프리카, 남미 등으로 경제 영토를 확장하고 있으며 걸프만협력회의(GCC)와 호주 등 40여개국과 FTA 체결을 서두르고 있다. 중국이 이처럼 FTA에 적극 나서는 것은 경제대국으로서의 입지 강화와 더불어 지역에서의 리더십 강화를 위한 전략적 포석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은 최근 대만과의 양안 간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을 체결한 바 있다. 중국은 이를 통해 양안(兩岸) 경제 통합을 가속화하는 한편 장기적으로는 대만과의 정치적 통일을 목표로 하고 있다.
중국, FTA로 경제영토 확장
중국과 대만의 ECFA 체결은 우리나라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과 대만은 대(對)중국 주요 수출품목 20개 가운데 14개가 중첩(overlap)되고 있다. 대만과 경쟁하는 14개 품목이 우리나라의 중국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60%에 이른다. 이는 중국과 대만의 ECFA 체결로 인해 향후 한국의 대중 수출이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도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은 중국에 대한 수출시장을 놓고 벌이는 일본과의 경쟁에서도 불리해질 수 있다. 일본은 이미 오래 전부터 대만 기업들과의 전략적 협력을 통해 중국 시장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향후 어떤 전략적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할까. 우선 한·중 간 FTA 협상을 지금보다 적극적으로 진일보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다. 이미 한국과 중국은 FTA 연구 단계를 지나 본격적인 협상준비 단계에 진입한 상태다. 특히 중국은 한국과의 FTA를 경제적 측면보다도 자국 중심의 지역주의 형성을 촉진하려는 전략적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한다. 즉, 한국과의 FTA를 서둘러 한·미 FTA를 견제하고 나아가 역내 FTA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한국은 중국의 이러한 의도를 십분 활용해 최대한 유리하게 협상을 이끌어 나가는 전략적 마인드가 필요하다.
다음으로 대만과의 FTA를 적극 검토하고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물론 시작은 FTA 체결을 위한 민간 공동연구부터 착수해야 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대만과의 FTA 체결은 한·대만 간 교역과 투자를 촉진시키고 내수시장과 서비스산업 등 여타의 시장 기회를 대폭 확장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특히 대만이 ECFA에서 터득한 노하우와 이점을 적극 활용하는 한편 한국 기업들의 중국 시장 진출에서도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몇 년간 양안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큰 폭으로 발전되고 개선됐다. 이러한 해빙 무드에 편승, 한국 역시 대만과 FTA를 추진할 수 있는 호기를 맞은 셈이다.
대만과도 협상 서둘러야
작년 3월 이명박 대통령은 ‘신아시아외교’ 정책을 발표하면서 아시아 국가와의 FTA 체결을 적극 추진해 한국이 아태 지역 FTA 네트워크의 허브 역할에 대한 구상을 밝힌 바 있다. 대만은 한국의 주요 무역 파트너일 뿐 아니라 오래 전부터 지정학적으로도 긴밀한 관계를 맺어 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독 대만과 FTA를 체결하지 않는다면 한국의 FTA 네트워크 허브 구상은 상대적으로 빛이 바랠 수도 있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硏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