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신학강좌] 영성의 길

입력 2010-09-07 18:02


(10) 임재의 기도

영성생활은 일생을 하나님의 임재 안에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는 구별된 공간뿐 아니라 우리가 일상적이라고 부르는 평범한 공간에서도 언제든지 일어난다. 일생을 안락한 기도실이 아니라 부엌에서 프라이팬과 함께 하나님 안에 산 사람이 있다. 로렌스 형제다. 그에 관한 이야기는 1692년에 나온 ‘하나님 임재 연습(The Practice of the Presence of God)’이라는 책을 통해 알려졌다.

로렌스 형제는 열여덟 살 때 우연한 기회로 회심한다. 추운 겨울날 잎이 떨어진 앙상한 나무를 보고 있을 때 한 생각이 그에게 들어왔다. “아, 저렇게 앙상한 나무에도 언젠가 싹이 돋고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겠지?” 그 생각이 그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한 경외의 길로 가도록 인도했다. 그는 그 감격을 안고 수도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을 만난 곳은 기도실이 아니라 뜻밖에도 수도원 부엌이었다. 그는 수도원 부엌에서 여든까지 일하며 살다가 1691년 2월 12일 하나님께 돌아갔다.

그에게는 일상의 시간과 기도하는 시간의 구별이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부엌의 온갖 번잡함과 달그락거리는 소음 한가운데서도, 심지어 몇 사람이 동시에 여러 가지 다른 일을 시킬 때에도 제단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것처럼 조용하고 평온하게 하나님을 소유합니다. 제게는 프라이팬으로 계란을 뒤집는 일이나 성전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이나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저는 일을 마치면 언제나 부엌 바닥에 엎드려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그때는 세상의 어떤 제왕도 부럽지 않습니다. 저에게는 성전에서 기도하는 일이나 수도원 부엌에서 지푸라기 한 가닥 줍는 일이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서 매일반입니다.”

로렌스 형제는 하나님의 임재는 은혜의 선물보다 그 은혜의 선물을 주신 분을 주목할 때 일어난다고 믿었다. “선물은 항상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선물 자체에서 위로를 받으면 황홀경과 환희에 빠지기 쉽습니다. 선물을 넘어서서 그것을 주시는 분에게 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영적생활의 수단과 목적을 혼동하지 않을 때 일어난다. 하나님 안에서는 거룩의 시간과 공간의 구별이 없다. 거룩한 시간과 공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과 연합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하나님 안에서는 큰일도 사소한 일도 없다. 하나님은 우리의 일의 크기에 주목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일을 사랑으로 하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주목한다. 죄를 지었어도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을 수 있다. 죄 짓고 회개한 다음 하나님을 바라보면 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고통마저도 하나님의 임재에서 떠날 수 없다.

로렌스 형제는 좌골 통풍으로 25년 동안 다리를 절며 살았다. 그는 말년에 늘 오른쪽으로 누워 잤다. 그 이유는 그렇게 눕는 것이 그에게 가장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옆에 있는 형제가 그를 돌려 누이려 하면 그는 늘 이렇게 말했다. “아닙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좀 더 고통 받을 수 있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말했다. “나의 유일한 소망은 주님을 위해 고난 받는 것입니다. 나의 유일한 슬픔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충분히 고난 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로렌스는 고통마저도 하나님의 임재의 통로라고 믿었고, 어거스틴의 말대로 소망의 크기가 은혜의 크기를 결정한다는 것을 그의 삶을 통해 보여주었다. 그와 함께하셨던 하나님이 곧 우리와도 함께 계신다.

이윤재 목사 (한신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