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사회 신드롬] 국정 방향 ‘포괄적 개념’이 인사 검증·司正 칼날로
입력 2010-09-06 18:41
‘공정한 사회’라는 문구가 갑자기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다. 아직 ‘공정 태풍’은 먼 바다에 위치해 있어 진로를 예상하기 어렵다. 청와대 측도 “공정 사회는 이제 시작”이라고 말하고 있다. ‘공정’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임태희의 ‘자율·공정·책임’ 구상=공정이란 단어는 임태희 청와대 대통령실장으로부터 나왔다. 임 실장은 3년 전부터 자율·공정·책임이라는 가치를 고민해 왔다는 후문이다. 임 실장은 한나라당 정책위의장 시절인 지난해 5월 22일 ‘21세기 분당포럼’ 창립 10주년 토론회에서 “창조 경제로 가려면 민간 자율을 통한 시장 확대, 자율적 시장구동을 위한 공정한 시장 법칙 수립, 시장 참여 기회가 제한된 사회적 약자 배려 등 자율·공정·책임의 핵심 가치가 선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임 실장은 그해 10월 1일 노동부 장관 취임식에서 ‘경쟁 책임 공정’을 노동정책의 3대 원칙으로 제시했다. 청와대가 8·15 경축사에서 공정한 사회를 설명하기 위해 제시했던 ‘자율 공정 책임’이라는 키워드와 정확히 일치한다.
◇MB 정권의 키(Key) 콘셉트로=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7월 대통령실장에 취임한 임 실장으로부터 공정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MB 정권 전체를 아우르는 기본 개념이 필요하며, 공정한 사회가 그 개념이 될 수 있다는 보고였다. 이 대통령은 임 실장의 건의를 받아들였다.
공정한 사회는 이 대통령이 주재한 8·15 경축사 1차 내부 독회에서 제시됐고, 청와대 참모들은 당시 국정과제비서관실을 중심으로 지난 2년 반 동안의 각종 ‘MB표 정책’들을 검토했다. 청와대는 경축사 2, 3차 독회를 거치면서 공정한 사회가 지난 2년 반의 정책들을 포괄할 수 있는 개념이 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한다.
이명박 정부는 취임 첫해인 2008년에는 ‘녹색성장’을 제안했고, 2009년에는 ‘친서민 중도실용’을 제안했다. 그런데 외부로부터 ‘이명박 정부의 정체성이 혼란스럽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녹색성장은 성장에 강조점을, 친서민 중도실용은 분배에 강조점을 두고 있는데 과연 어느 쪽이냐는 것이다. 게다가 친서민 중도실용은 일종의 방법론이지 국정지표는 아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6일 “세계화와 신자유주의가 2008년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계기로 양극화 심화 등 한계를 노출했지만 아직 해법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라며 “공정한 사회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설명했다.
◇불기 시작한 공정 바람=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공정한 사회 개념이 제시됐지만 반향은 크지 않았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청와대는 공정을 조직적으로 전파하기 시작했다. 일종의 ‘톱 다운(Top-Down)’ 방식이었다. 임 실장은 지난달 22일 자신이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공정한 사회를 주제로 토론을 벌였고, 27일 이 대통령이 주재한 확대비서관회의에서는 한신대 윤평중 교수가 공정한 사회를 주제로 강연했다. 30일 이 대통령이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에서는 수석실별로 공정한 사회 구현을 위한 정책들이 보고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 5일 청와대에서 공정한 사회를 주제로 개최한 장차관 워크숍에서 “국정을 운영하면서 일 하나하나가 공정한 사회라는 기준에 맞는지, 맞지 않는지 냉철하게 생각하면서 살펴야 한다”고 지시했다.
◇이후 전개 방향은?=공정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정책보다는 일련의 인사 경질 사태 때문이었다.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와 장관 후보자 2명이 이 잣대에 걸려 낙마했다. 민주당 강성종 의원 체포동의안과 한나라당 강용석 의원의 출당이 관철되고, 딸 특채 문제로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사퇴한 것도 공정이란 기준 때문이었다. 특히 이 대통령이 장차관 워크숍에서 “기득권층에게는 매우 불편스럽고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밝히면서 공정은 국가적 이슈가 되고 있다.
이 대통령의 공정한 사회가 어디로 향할지는 미지수다. 공정이라는 단어 자체가 너무 추상적이어서 여러 갈래 해석이 가능하다는 지적도 있다. 수차례 인사사태를 거치면서 공정은 인사 검증의 엄정한 잣대나 ‘사정(司正)’과 동일시되고 있다. 검찰이 특수부장회의를 소집하는 등 사정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자 임 실장이 “공정한 사회는 사정이 아니라 제도화가 핵심”이라고 내부적으로 제동을 걸기도 했다. 그러나 정치권과 검찰 등에서는 여전히 ‘공정=사정’이라는 시선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공정한 사회는 향후 2년 반 동안 모든 국정운영의 핵심적인 가치가 될 것”이라며 “종합선물세트를 내놓겠다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지속적으로 정책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도영 기자 dy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