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출신은 구호 손길서도 ‘왕따’
입력 2010-09-06 18:23
英 가디언, AP 사진 속 아이 통해 본 ‘파’ 홍수 참상 르포
아이들이 배고픔에 지쳐 잠들었다. 흙바닥 위 그대로 펼쳐놓은 더러운 담요는 4명이 자기엔 좁다. 한 아이는 겨우 상체만 몸을 누인 채 흙바닥 위에서 잔다. 아랫도리는 가리지도 못했다. 이들 중 한 아이는 너무 배가 고픈지 빈 젖병만 빨고 있다. 파리 떼들이 새까맣게 달려들지만 쫓을 힘이 없어 보인다.
AP통신 기자가 찍은 이 한 장의 사진은 세계를 울렸다. 80년 만의 최악 홍수가 덮친 파키스탄 수재민들의 고통을 어떤 통계수치보다 생생히 웅변하고 있어서다.
지난주 이 사진을 ‘목격자(Eyewitness)’ 코너에 내보냈던 영국 일간 가디언은 사진 속 주인공들을 찾아 그들의 실상을 담은 르포를 5일 내보냈다.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맞댄 아자켈의 자생 캠프촌이다. 키버 파춘크와주(州)의 주도인 페샤와르에서 19마일 떨어진 곳이다. 젖병을 문 주인공은 겨우 두 살인 레자 칸. 아이의 쌍둥이 형제 등 7명의 남매가 함께 지내는 캠프촌에선 열아홉 가구가 스무개 남짓한 텐트를 치고 산다.
어머니 파티마는 담요 하나에 옹기종기 앉아 보채는 7명의 아이들을 어르고 달랬다. 아이 8명 중 일곱 살 난 둘째 딸은 피부병이 심해 아버지와 병원에 가고 없는 상황이었다.
배고픔은 일상화됐다. 식사는 하루 한 끼. 파티마는 “오늘은 아무것도 먹이지 못했어요. 레자도 우유를 먹어본 지 한 달이 넘었죠”라며 빈 젖병을 빨고 있는 레자를 가리켰다.
파리 모기와도 사투를 벌여야 한다. 얕게 판 구덩이로 화장실을 대신하다 보니 위생 관리는 엉망이다.
파키스탄에선 2000만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지만 레자 가족 같은 아프가니스탄 출신들의 상황은 더 열악하다. 레자 집안은 지금의 텐트촌에서 20분 거리의 아자켈 아프간 난민 캠프에서 2만3000여명 의 난민과 수십 년째 살아왔다. 그런데 이번 홍수가 난민 캠프를 덮쳐 뿔뿔이 흩어지게 됐다.
아프간 난민들은 파키스탄 이재민에 대한 구호의 손길에서 ‘왕따’ 신세다. 번듯한 이재민 구호 캠프촌에 가고 싶었지만 파키스탄 시민증이 없어 문전 박대당했다. 그래서 아프간 출신들끼리 함께 생활하고 구걸로 연명한다. 텐트촌을 가로지르는 도로는 이들에겐 생명선이다. 차 한 대라도 지나갈 경우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달려 나와 ‘도와주세요(Help me!)’를 외친다.
레자 쌍둥이 형제를 무릎에 앉힌 채 “아이들이 배고픔에 죽어가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파티마의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울음이 섞일 것 같았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