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문일] 公正에 대하여

입력 2010-09-06 17:53

국민 프로그램이 된 ‘1박2일’에서 김C는 자율여행이란 미션이 떨어지자 ‘지역경제를 살리는 공정여행’이란 주제를 내걸었다. 여행자의 즐거움이 주민에게는 피해와 환경오염을 남기는 불공정 여행 대신 여행자와 주민이 평등한 관계로 만난다는 개념이다. 김C가 MC몽 이수근과 함께 들른 보성 녹차밭은 방영 다음주 방을 못 구할 정도로 관광객들이 몰렸다고 한다. 공정여행 취지에 공감해서 온 것은 아니겠지만 공정이란 말은 이렇게 우리 생활에 파고들었다.

공정여행은 공정무역에서 따왔다. 공정무역은 선진국이 후진국의 원료와 제품을 적정한 가격을 주고 지속적으로 구입해 생산자와 노동자의 생활을 개선시키려는 국제적 사회운동이다. 수공품 커피 코코아 설탕 차 바나나 꿀 면직물 포도주 청과 초콜릿 꽃 등이 주된 상품이다. 시장원리에 기반을 두고 상생(相生)을 도모한다는 점에서 일방적인 자선운동과 구별된다. 불현듯 우리 곁에 우뚝 선 ‘공정사회’는 공정여행처럼 공정무역의 모방일까.

공정사회론의 다른 원류(源流)로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떠오른다. 샌델의 철학은 공동체주의(Communitarianism)로 불린다. 정치철학의 고전 존 롤즈의 ‘정의론’(1971)을 비판하며 나타난 공동체주의자들은 고전적 자유주의와 개인주의에 반대하지만, 정치적으로는 좌도 우도 아닌 ‘급진적 중도’를 자처한다. 조지 W 부시 정권이 표방한 ‘온정적 보수주의’의 이론적 근거가 됐지만 한국에서 샌델의 책은 좌파들에게 더 널리 읽힌다. 이 같은 중간성이 중도실용을 표방한 이명박 정부와 부합했는지 모른다. 광복절 경축사를 만든 청와대 메시지팀의 분발이 돋보인다.

이 대통령은 5일 장·차관 워크숍에서 “이번 정권 하에서 대한민국이 공정한 사회를 만든다는 것이 마지막 기회일 수 있고 매우 좋은 기회일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사회에서 공정은 곧 정의로 받아들여진다. 공정사회를 영어로 ‘social justice’로 할 건가 ‘fair society’로 할 건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전자라면 실천적이지만 후자라면 선언적 의미에 그칠 터다.

‘공정사회’와 유명환 장관 경질에서 전두환 정권 시절의 ‘정의사회 구현’을 떠올리며 몸을 움츠릴 공직자들이 적지 않은 듯하다. 총리와 장관 후보자들을 날린 국회의원들은 얼마나 공정하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국민이 많다. 대통령 임기가 반이나 남았다. 썩은 정치인들도 공정하게 밝혀졌으면 좋겠다.

문일 논설위원 norw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