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홍사종] 미술시장을 숨쉬게 하려면

입력 2010-09-06 17:53


“미술품 매매차익에 대한 20% 과세는 결국 한국미술시장을 고사시키고 말 것”

세계는 지금 미(美), 즉 ‘아름다운 가치’를 놓고 전쟁 중이다. 이제 패션, 생활용품은 물론 전자제품, 주택에 이르기까지 시장에서의 모든 상품은 아름다운 가치를 제품의 우선 경쟁력으로 삼는다. 정보사회의 총아인 스마트폰 시장은 기술력의 싸움이기도 하지만 또한 미적 감각 즉 디자인 전쟁이기도 하다. 냉장고시장도 1970∼80년대 ‘성에가 끼지 않는 냉장고’ ‘에너지 효율이 높은 냉장고’ 등의 광고 카피를 포기하고 ‘아름다운 냉장고’를 선전하는 것을 보면, 정보혁명 이후 끝 간 데까지 간 기술경쟁보다 미적 안목을 경쟁요소로 삼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제 아름다운 간판도 경쟁력이고 아름다운 도시도 경쟁력인 시대가 됐다.

이미 프랑스, 이탈리아와 같은 문화선진국들은 오래전부터 도시와 마을, 그리고 그 안에 담겨진 삶의 모든 양식까지 미적 상상력을 부여하며 가꾸어왔다. 그렇게 가꾸어진 미의식은 지금 이들 나라의 선진적 국가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그리하여 격조가 높아진 미적 안목은 자국의 모든 생산활동에까지 영향을 미쳤고 특히 문화산업분야에서 이들 나라가 차지하는 생산성은 가히 천문학적이다. 우리나라에서조차 패션, 디자인 등 문화산업분야가 일반산업보다 두 배 이상의 경제성장률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보더라도 미와 관련된 산업의 생산성을 실증하고 있다.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미와 관련된 산업의 출발이 순수미술 시장의 육성과 지원에서 비롯되었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세 이후 문예 대부흥을 주도했던 서구의 귀족은 폭력을 기반으로 했던 기사세력이었다. 흥미롭게도 현대판 졸부로 비유될 수 있는 이 귀족세력을 순치시키고 높은 미적 안목의 소유자로 만들어낸 것도 미켈란젤로, 보티첼리, 지오토 같은 화가들이었다.

귀족들의 무조건적 후원과 미술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출발점이 되면서 이들 나라는 문화선진국의 기반을 닦았다. 급기야 이들이 보유했거나 기증한 미술작품을 어린 시절부터 온 거리에서 맞닥뜨리며 살아온 시민들의 세련된 미의식은 현대에 와서 미술시장규모의 크기는 물론 패션, 건축, 산업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발현되어 경제발전의 동력이 되고 있다.

지금 유아기를 막 벗어난 대한민국 미술시장이 위기를 맞고 있다. 2011년 1월 1일부터 양도소득세를 걷겠다는 것인데 조세형평성이 그 이유다. 미술시장 관계자들과 작가들은 작고작가의 6000만원 이상의 미술품 거래에 대해 매매차익의 20%를 과세하는 이 방안이 결국 걸음마 단계의 한국미술시장을 고사시킬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전체 미술계 구성원 가운데 미술시장에서 거래되는 작가의 비중이 1% 남짓한 상황에서 무리한 과세정책은 가뜩이나 불황인 미술작품의 구매의욕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조장할 것이 뻔하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현재의 미술시장에서 정부가 걷어가는 예상 조세액도 2009년 기준 최대 28억원 정도로 시행비용이 과세액을 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과세절차가 아니라 불황을 겪고 있는 미술시장 전체로 번지는 여파다. 미술품에 대한 정부의 지원과 육성의무를 대신하는 결코 많지 않은 소장가들의 구매욕이 꺾이면 시장 전체를 냉각시켜 중저가 미술시장까지 고사를 면치 못할 것이다.

지금 세계의 미술시장은 무서운 속도로 몸집을 키워가고 있다. 중국시장이 한국미술시장을 종속시킬 기세로 성장하고 있는 배경에는 미적 가치에 대한 우위가 곧 미래사회에 대한 성장 동력이 될 것임을 인식한 중국인의 전략이 숨겨져 있다.

정부는 단지 조세 형평성의 잣대를 들이대서 가사상태의 미술계의 숨통을 조이는 우를 범하기보다 먼저 한국미술 유통시장의 규모를 키우는 일을 도와야 할 것이다. 위축된 시장의 활력을 아시아 정상의 수준으로 키우고 향후 순차적으로 과세해도 결코 늦지 않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다. 미술시장의 주도권을 세계 속에 확보해나가는 일이야말로 아름다움이 곧 국가경쟁력인 시대의 문화 인프라를 구축하는 중대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홍사종 미래상상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