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자원 해외로 줄줄 새도 손 못써… 유명무실한 ‘국외반출 승인대상제’

입력 2010-09-05 18:27


날이 갈수록 중요성이 높아지는 생물자원을 지키려고 만든 ‘국외반출 승인대상제’가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환경부는 현재 1137종인 승인대상 생물종을 1540종으로 늘리기 위해 고시 개정을 추진하고 있지만 제도 시행 이후 12년 동안 적발 실적은 전혀 없었다.

5일 환경부와 관세청 등에 따르면 1998년 제도 시행 이후 현재까지 국외반출 승인대상 생물자원을 무단 반출하다 적발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국외반출 승인대상 생물자원은 한반도 자생생물 중 한반도에서만 발견되거나 경제적 활용가치가 큰 종으로 지정됐다.

승인대상으로 지정되면 해외 반출할 때 지방환경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1998년 이후 승인된 사례는 2건에 불과하다. 환경부는 관세청에 단속 업무를 위임했지만 일선 세관에선 인력과 전문성 부족 탓에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세관 검색대에서 식물이 발견되면 국립식물검역원에, 동물은 국립수의과학검역원에 넘겨져 검역을 받는다. 하지만 본보 확인 결과 양 기관 모두 국외반출 승인대상 생물자원에 대해 “업무 소관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소관 법령상 식물의 병해충과 가축 전염병만 통제한다는 것이다. 해외반출 승인대상 생물자원은 사실상 단속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실제로 세관이 적발한 야생 동식물 밀수출입 실적은 3년간 51건인데 모두 ‘멸종위기 야생 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이 보호하는 생물종으로 한정됐다.

환경부는 세관에 검색 자료를 제공했다고 밝혔지만 정작 환경부 법정관리종 홈페이지는 2007년 개정 고시 이후 업데이트되지 않아 522종만 표시되고 있다.

환경부는 “멸종위기종(221종), 수출입 허가대상종(689종)을 제외하면 자유롭게 국내 생물자원 반출 가능하기 때문에 국외반출 승인대상 생물자원을 지정해 국내 생물자원을 보호해야 한다”고 입법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일선에선 생물자원이 해외로 새나가도 막을 방법이 없다. 실제로 2003년엔 일본인 A씨가 한국에서 동박새를 무단으로 가지고 나갔다가 일본 경찰에 적발돼 한국 경찰에 수사의뢰가 온 적이 있다.

생물자원을 바탕으로 한 신약·신물질 개발 등 바이오산업은 2000년대 이후 매년 11%씩 성장하고 있다. 세계시장 규모는 약 200조원, 국내시장은 약 4조원으로 추산된다. 기후 변화로 야생 동식물의 멸종이 가속화되는 추세에 따라 각국의 생물자원 확보경쟁은 치열해지고 있다. 선진국은 산업화 초기부터 해외 생물자원 확보에 열을 올렸다. 한국 고유종 수수꽃다리(라일락)를 가져간 미국 종묘회사는 미스킴라일락이라는 이름으로 상품화시켜 미국 라일락 시장의 30%를 점유하고 있다.

정부는 국립생물자원관 등을 통해 동남아 등 해외 생물자원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새나가는 국내 생물자원을 ‘생물 스파이’로부터 지키기엔 집행력이 터무니없이 약하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