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의 ‘CEO 리스크’…무엇이 문제인가
입력 2010-09-05 22:16
금융권의 ‘최고경영자(CEO) 리스크’가 다시 급부상했다. 이번에는 국내 금융회사 중 지배구조가 견실하다고 평가되던 신한금융지주에서 터져 충격파가 더 크다.
CEO 리스크는 CEO의 교체 등을 둘러싸고 경영권 싸움이 벌어져 경영 불안정이 커지는 현상을 말한다. 정치적 외압 등에 자유롭지 못한 국내 금융환경의 후진성, 내부 감시체제가 작동되지 않는 기업지배구조, 후계양성 체제의 불투명성 등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흔들리는 지배구조=5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주요 은행 지주회사와 은행들은 주인 없는 회사라는 특징 때문에 상대적으로 큰 CEO 리스크를 안고 있다. 그렇지만 4대 지주회사들 중 신한금융지주와 하나금융은 그동안 전문경영인체제가 자리 잡아 상대적으로 기업지배구조가 건실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지주 출범부터 줄곧 회장 자리를 맡았다. 지난 3월 네 번째 연임에 성공하면서 임기는 2013년까지 연장됐다.
하지만 장기집권은 막강한 ‘경영 오너십’을 구축한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경영진을 견제하는 이사회, 감사위원회 역할이 약해진다는 단점이 있다. 라 회장은 지난 3월까지 이사회 의장 자리를 겸임했다. 이사회의 독립성이 보장될 수 없는 구조였다. 지난해 이사회 안건 가운데 감사, 위험관리 등 경영진을 견제하는 내용의 안건이 차지한 비중은 14% 정도였다.
하나금융지주도 상황이 비슷하다. 김승유 회장으로 대표되는 전문경영인 체제가 폐쇄성을 높이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내·외부 감시 장치가 아무리 잘돼 있어도 CEO 하나가 잘못하면 모든 것을 망치게 된다. CEO 후보군을 미리 발굴하고 양성해 최종 선발하는 체계를 구축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KB금융지주는 외풍에 좌우되면서 CEO 리스크를 노출했다. 지난해 8월 황영기 지주 회장이 자진사퇴한 뒤 1년 이상 흔들렸다. 강정원 전 행장이 차기 회장 선출에 뛰어들었다가 공정성 시비에 휘말렸다.
금융감독원의 고강도 조사에서는 강 전 행장과 이사회의 부적절한 관계, 무리한 투자에 따른 손실 등이 불거졌다.
금융권 관계자는 “회장추천위원회 등으로 새로운 경영진을 발굴하고 뽑아야 할 이사회가 휘둘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경영 오너십이 약한 지주회사는 외부 입김에 자주 흔들리다보니 외부에 줄을 대고, 단기성과에 집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거수기’ 사외이사가 문제=1997년 외환위기 이후 모든 금융회사는 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했다. 대주주·경영진을 견제하고 감시할 목적이었다.
그러나 사외이사는 거수기로 전락했다. 경영진·대주주 영향력 아래 있는 인사를 사외이사로 앉히면서 견제와 균형체제를 구축하는 데 실패했다. CEO와 학연, 지연 등으로 엮이면서 독립성을 잃었다. 또 사외이사의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금융지주회사 및 은행 사외이사 가운데 대주주 관계인은 11.3%에 이른다. 금융 관련 전문가는 6.6%에 그쳤다.
이 때문에 금융위원회는 ‘이사회 살리기’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달 정기국회에 ‘금융회사의 경영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은행 부행장 등 집행임원은 CEO가 아닌 이사회가 임면 권한을 갖고, 임기를 보장할 방침이다. CEO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하고, 사외이사 수를 늘리는 방안도 포함돼 있다.
김찬희 기자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