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유명환 낙마 ‘특혜채용’ 근절 계기로
입력 2010-09-05 17:45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4일 딸의 특혜 채용 논란에 책임을 지고 사의를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이 사의를 수용할 것으로 알려졌으나 유 장관의 진퇴와는 별개로 정부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고위 공직자 자제들이 부모 후광에 힘입어 특채 형식으로 공직에 진출하는 관행의 실태 전모를 파악하는 일이다. 이런 일은 업무의 특수성을 내세우는 외교부에 특히 많다 하나 다른 행정 부처나 우후죽순처럼 만들어지는 각종 위원회에도 적지 않을 터이다. 이번 일은 이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국정기조로 제시한 ‘공정한 사회’를 무색케 했지만 공정한 사회를 위한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외교부가 한나라당 홍정욱 의원에게 제출한 국감자료에 따르면 영어능력이 우수한 직원을 선발하는 외무고시 2부와 영어능통자 전형의 합격자 중 상당수가 외교부 전·현직 장·차관과 3급 이상 고위직 자녀라고 한다. 이 제도는 외교관이나 기업 해외주재원 자녀 등 일부 계층에게 유리해 신분 대물림이 이뤄지는 통로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게다가 2013년부터는 외무고시가 폐지되고 대신 외교아카데미를 통해 선발하도록 되어 객관적 실력 외의 요소들이 고려될 소지가 넓어졌다.
이런 터에 유 장관 경우가 불거졌고 이 대통령 특별지시로 행정안전부가 특별감사를 하고 있다. 외교부에는 재앙이지만 공정한 사회를 위해서는 축복이다. ‘끼리끼리 문화’에 젖어 있는 외교부의 인사와 조직 전반이 이번 일을 계기로 혁신돼야 한다. 또 외교아카데미 선발 절차도 공정성과 투명성이 확보되도록 철저하게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우리사회는 두 차례의 국제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신분 상승의 통로가 좁아지고 계층이 고착되는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 그 결과 사회에 활기가 줄어들고 정부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팽배해지고 있다. 가난한 청년들이 개천에서 용 나기를 꿈꾸던 사법시험과 행정고시를 정부가 폐지하거나 축소하고 법학전문대학원과 외부전문가 특채로 대체하려는 것도 강자에게 유리한 규칙 변경이다. 이 대통령이 말한 공정한 사회는 우선 게임 규칙이 공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