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멜합창단과 지휘자 김승순씨 “발레로 보던 ‘백조의 호수’ 합창합니다”

입력 2010-09-05 19:29


“제자들에게 노래를 통해 힘과 용기를 내라고 북돋워준 일밖에 없는데 이 나이에 예멜합창단을 다시 지휘할 수 있게 돼 기쁩니다.”



지난달 26일 서울 정동 이화여고 유관순기념관 연습실에서 만난 김승순(76·캐나다 토론토 예멜합창단 및 오케스트라 지휘자)씨는 “40여년 전 창립한 예멜합창단의 제자들과 함께 ‘백조의 호수’를 공연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설렌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김씨는 오는 13일 오후 7시30분 서울 강남구 신사동 광림교회(김정석 목사) 장천홀에서 예멜합창단이 연주하는 ‘백조의 호수’를 지휘한다. 주로 발레로 공연되는 차이코프스키의 곡을 김씨가 합창곡으로 편곡한 것이다.

이번 공연을 위해 지난달 중순 내한한 김씨는 “30여분 동안 모두 6막으로 진행되는 이 공연은 마법에 걸린 오데트 공주와 지그프리드 왕자의 뜨겁고도 지고지순한 사랑을 노래로 표현하면서 합창 예술의 진수를 맛볼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올해로 42돌을 맞은 예멜합창단(단장 윤현주 서울대 음대 교수)은 1968년 당시 이화여고 음악교사였던 김씨의 주도로 창단됐다. 김씨는 이 합창단을 3년 동안 지휘하다가 71년 미국으로 건너갔고, 지금은 캐나다 토론토에서 음악 활동을 하고 있다.

‘예멜’은 ‘예쁜 메아리’ ‘예술 멜로디’ ‘예수 멜로디’라는 뜻이다. 교수와 세무사, 시민단체 간사, 주부 등 각자의 영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30∼50대 이화여고 크리스천 동문 30여명으로 구성돼 있다. 합창단은 2년마다 정기연주회를 갖고 있으며 이화여고 후배들 앞에서는 물론, 소년원과 복지관, 병원 등에서 공연하고 있다. 합창단은 찬송가를 비롯해 가곡, 오페라, 합창, 뮤지컬까지 폭넓은 레퍼토리를 자랑한다.

연습에 참석한 단원들의 표정에는 뿌듯함이 가득했다. 서로 얼싸안으며 안부를 묻는 모습은 영락없는 여고생들이었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단원으로 활동했다는 한천수(54)씨가 이화여고의 상징을 하나하나 열거하자, 모두들 웃음보를 터뜨렸다.

한씨는 “예멜합창단은 곧 나”라고 표현했다. 아이 낳는 달 빼고 매달 합창 연습에 참석했다는 이야기였다.

“합창단원 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어요. 여고 졸업생 중 1∼3명밖에 뽑지 않았거든요. 남자 친구들은 우리 합창 연습을 기다리다 모임을 결성하기도 했지요. 이화동산에서 뛰어놀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세월이 화살처럼 빠르네요.”

예멜 단원으로 살아온 지난 세월이 자랑스럽다는 권태희(55)씨는 “언니 동생들과 함께 합창을 하며 마음이 순화되고 스트레스를 모두 날려 보내고 있다”고 털어놨다. 막내 단원 황선화(31)씨는 “합창단 선배들이 인생 상담도 해 주시고 기도도 함께하니 합창단 연습이 늘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나이를 먹고 옛 은사와 재회한다는 것은 자못 흥분되는 체험이다. 단원 중 한 명이 ‘선생님 파이팅!’을 선창했다.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함께 노래하며 최선을 다하자는 의미였다.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