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수민 (4) ‘교수직 접고 목회자의 길 갈까’ 고민

입력 2010-09-05 19:10


내가 연구교수로 1년간 머무를 대학은 ‘고분자 화학’이 세계 최고 수준인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이었다. 실명 후 한 달간 몸을 추스르긴 했지만 그런 몸으로 전공을 연구한다는 것이 쉽지 않아 스스로 위축되어 있었다.

매사추세츠대 화학과 교수는 노벨상 후보로 거론된 로버트 렌츠 박사를 비롯, 국제학회를 통해 많이 알려진 스타인, 포터 박사와 학과장인 맥 나이트 박사 등이었다. 이들과 학문적 대화를 나눌 때 전공분야 지식이 쑥쑥 쌓이는 것을 느꼈다. 나는 대화 메모가 안 되니 반드시 녹음을 해야 했다. 이 때마다 아내가 곁에서 도움을 주었다. 아내도 대학에서 나와 같이 화학을 전공했으니 전문용어를 잘 알았다.

어느 날 로버트 박사가 나를 만나자고 했다. 눈을 잃게 된 과정과 현재 상태를 물어보며 안타까워하더니 그럼에도 닥터 리 표정이 밝은 것이 신기하다고 했다.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다 주님이 빛과 음성으로 저를 찾아오셨지요. 이사야 41장 10절 말씀을 주셔서 힘과 용기를 얻었습니다. 이제 저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화학 학자로 더 열심히 공부할 것입니다.”

“닥터 리는 과학자입니다. 그런데 이런 우연한 일을 사실로 믿고 하나님이 찾아오신 것이라고 확신합니까?”

답답하고 의아하다는 투의 로버트 박사의 말에 나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저는 어려서부터 크리스천이었고 교회 장로입니다. 저는 과학자인 아이슈타인의 ‘우연이란 하나님이 남몰래 일하는 방식’이라는 말을 아주 좋아합니다. 신은 인간에게 우연을 베풀지만 기독교에서 보면 이것은 기적입니다. 저 역시 주님이 베푸신 기적 때문에 절망을 극복하고 이 과정에 들어와 연구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 저와 함께 계시며 저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저는 외롭지 않습니다. 저는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 것입니다.”

“오, 원더풀! 닥터 리, 정말 멋집니다. 하나님이 계속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한국에서 학생을 가르치다 세계 석학들을 만나니 배울 것이 많았다. 남보다 두 배는 노력해야 했지만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어려움이 다가왔다. 당시 한국 정부에서 주는 1500달러와 학교에서 지급하는 연구비 500달러를 합해 2000달러로 생활해야 하는데 난 병원수술비로 매달 1000달러를 갚아야 했다. 4명의 식구가 1000달러로 살기가 벅찼다. 하나님께 이중고를 주시지 말아 달라고 기도했는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당시 우리가 출석하던 노셈튼 한인감리교회 유근원 목사님이 우리 사정을 알고 뛰어다니시더니 저소득층 확인서를 만들어 병원에 제출, 더 이상 수술비를 갚지 않아도 되게 되었던 것이다. 비로소 우리 가정형편이 펴지게 되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여기며 감사를 드렸다.

정부와 계약된 1년의 연구교수 생활이 끝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실명한 상태에서 다시 모교로 돌아가 학생들을 가르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유 목사님이 교수로 돌아가기 힘들다면 미국에서 신학공부를 해서 목회자가 되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권유했다. 이 문제를 놓고 며칠간 기도하고 난 뒤 보스턴대학교 신학대학 얼리 빈 학장을 만났다.

빈 학장은 미국에 시각장애를 가진 목사와 교수가 매우 많으며 모두 목회와 강의를 잘 하고 있다고 나를 격려했다. 그리고 무조건 신학교 입학을 허락한다고 했다. 내가 교회 장로인 것에 가장 큰 점수를 준 것 같았다. 보스턴신학대학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졸업한 학교이며 한국의 김동길 교수도 이곳 출신이다.

나는 일단 한국에 들어가 서류를 정리한 뒤 다시 미국에 들어오기로 하고 비행기를 탔다. 1년 전 김포공항을 떠날 때는 공항이 희미하게나마 보였지만 이젠 형체조차 인식할 수 없었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