比 인질극 진압 명령 식당서 결정?… 마닐라 시장 등 위기관리 책임자들 지휘본부 이탈

입력 2010-09-05 18:50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지난달 23일 전직 경찰관이 인질극을 벌일 당시 시장과 부시장, 경찰 지휘자 등 위기관리 책임자들이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 진압작전 명령을 내렸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드러나 비난이 빗발치고 있다.

사건 당일 위기관리위원회의 위원장과 부위원장이었던 알프레도 림 마닐라 시장과 이스코 모레노 부시장이 모두 지휘본부를 이탈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AFP통신이 4일 보도했다. 림 시장은 지난 3일 열린 청문회에서 “인질극이 시작된 오전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해 식당에 가 식사를 했다”며 “인질극이 길어질 것으로 생각했다”고 변명했다. 그러나 문제의 식당에는 림 시장뿐 아니라 사건 당일 진압명령을 직접 내린 로돌포 매그티베이 총경까지 현장 지휘관을 대동해 함께 있었다는 증언이 나와 파문이 증폭되고 있다.

모레노 부시장도 4일 열린 청문회에서 인질극 진압작전이 벌어지던 순간에 인근 호텔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그는 “내가 뭘 할 수 있었겠는가. 현장으로 나가 총알이라도 맞았어야 했는가”라고 반문하는 행태를 보였다. 이어 “웨이터에게 부탁해 원래 나오고 있던 TV 스포츠 채널을 돌려 생방송으로 경찰의 구출작전은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AFP는 베니그노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이 이번 사건에 대해 스스로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필리핀 현지 경찰의 미숙한 대처로 필리핀 버스 인질극 희생자가 늘었다는 비난과 ‘반(反)필리핀 기류’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아키노 대통령은 3일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당연히 책임지게 될 것”이라면서 “지난달 발생한 사건의 모든 책임은 내게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키노 대통령이 어떤 방식으로 책임질지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고 통신은 전했다.

아키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참석한 필리핀국방대학 졸업식에서도 “인질 사태는 보안당국에 경종을 울린 것”이라며 “경찰의 장비와 훈련이 얼마나 부족한지 여실히 파악했다”고 개탄했다.

이동재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