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기독교계, 한·일 강제병합 전후 “4가지 명분 내세워 병합 지지했다”

입력 2010-09-05 19:30


1910년 한·일 강제병합 전후 일본 기독교계는 어떤 입장이었을까.

서정민(사진) 연세대 교수는 4일 한국기독교역사학회가 마련한 학술발표회에서 ‘한일병합에 대한 일본 프로테스탄트 기독교계의 견해’라는 발제에서 이에 대한 해답을 제시했다.

서 교수는 1894년부터 1919년 3·1운동 직전까지 한일병합 주제와 직간접 관련된 일본 기독교계 저널의 논설 44편을 분석한 결과, “대다수 일본 기독교 지도자들이 서구열강과 러시아 중국으로부터 한국을 구원하기 위해, 한국의 갱신과 개혁을 위해, 동양의 평화를 위해, 한국은 본래 하나님의 섭리로 일본에 속했기 때문이라는 4가지 명분을 내세워 한일병합을 지지했다”고 밝혔다. 1910년 9월 1일자 ‘복음신보’에 실린 ‘대일본의 조선’이라는 논설은 신명기 31장을 빗대어 한국을 하나님이 조상들에게 준 약속의 땅이라며 조선 지배를 하나님의 섭리와 연계, 정당화했다.

서 교수는 우치무라 간조 등 소수 기독교 지도자들은 한일병합을 부정적으로 봤다고 강조했다. 우치무라는 1909년 12월 ‘성서의 연구’에 기고한 ‘조선국과 일본국-동양평화의 꿈’이란 글에서 “일본국을 위해서는 슬프도다. 일본은 지난 십년 동안 지상에서 많은 것을 얻었다. 대만 사할린 만주 조선 등. 그러나 일본국은 영(靈)에서 많은 것을 잃었다. 사기는 날로 쇠해지고 도덕은 날로 떨어진다”고 경고했다. 우치무라는 한국의 대부흥운동에도 주목, “국권상실의 보상으로 받은 하늘의 축복”이라고 위로했다. 일본조합교회 가시와키 목사는 일본 지도자의 성적 추문 등 자격문제를 거론, 병합논리를 반박하기도 했다.

서 교수는 해방 후 일본 기독계의 38편의 관련 성명을 분석하고 전쟁협력문제, 천황제 이데올로기에 대한 맹신적 숭배, 국가신도에 대한 우상숭배, 아시아 민중에 대한 수탈과 침략의 죄과에 대한 진솔한 고백이 주종을 이뤘다고 설명했다. 그는 “올해 한일병합 100주년을 맞아 일본 NCC와 한국NCC가 병합의 역사에 대해 원천무효 선언과 정부차원의 무효화 결의를 촉구한 것은 한·일 기독교의 새로운 동반자 관계를 가능케 하는 서막”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함태경 기자 zhuanji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