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군 창설 60주년] 국방도 女風당당… 타자 치던 그들, 이젠 전투기도 몬다

입력 2010-09-05 15:00


대한민국 여군(女軍)이 6일 창설 60주년을 맞았다. 6·25전쟁 발발 두 달여 뒤인 1950년 9월 6일 피난지 부산에서 500명의 여성의용군교육대로 출발한 여군은 60년 만에 6162명으로 성장했다.

국방부는 여군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사진 전시회와 여군 정책발전 워크숍을 개최한다. 또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항공작전사령부 강선영 중령 등 근무유공 여군 12명을 표창할 예정이다.

◇출발은 미약했지만…=군은 공식적으로 한국 여군의 태동을 여성의용군교육대에서 찾는다. 그러나 여군 활동은 이전부터 있었다. 48년 8월 31명의 간호장교가 배출됐고 이듬해 2월 육군항공사령부 예하에 여자항공교육대가 창설돼 15명이 입대했다. 같은 해 9월 32명의 여성 체육교사들이 배속장교로 선발돼 중·고교에서 교련 교육을 시키거나 단기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이들은 이후 여성의용군교육대에 합류했다. 여성의용군교육대는 당초 후방에서 행정지원 업무를 담당했으나 전투가 격화되자 전방에 배치돼 북한 여군이나 중공군 여군 포로 심문 임무를 맡았다.

53년 휴전 후 여성의용군교육대는 정규군으로 전환됐다. 여군은 타자 기술을 처음 도입하는 등 군 행정 분야에 혁신을 가져왔으며, 55년 독자적인 교육훈련 기관인 여군훈련소를 창설했다. 이 무렵 각 부대에 여군 소·중대가 운영되기 시작했다. 69년 특전사에도 여군 중대가 생겨 7명이 공수요원으로 투입됐다. 이들 중 정효단 전 상사는 16명의 남자 군인과 함께 강도 높은 낙하조장 훈련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71년 세계 최초의 여성 ‘점프마스터’가 되기도 했다. 69년부터 73년까지 여군 11명이 공보·민사심리 장교로 베트남전에 참전하기도 했다.

◇시련과 도약=여군은 80년대 초 호된 시련기를 거친다. ‘여군운영활성화계획’에 따라 900명이던 인원이 600명 선으로 줄게 된다. 그러나 80년대 중반 필요성이 다시 제기돼 89년 말 800여명으로 늘었다.

90년 시행된 여군병과 해체는 남자 군인들과 모든 병과에서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길을 연 여군사(史)의 분수령이 됐다. 여군은 보병 정보 병참 부관 정훈 등 7개 병과에 분산 배치됐으며 이후 항공 화학 수송 공병 헌병 병과도 개방됐다. 97년 공군사관학교 입교가 허용된 것을 시작으로 육사(98), 해사(99)도 여생도를 받기 시작했다.

2002년 공군 최초의 여성 전투기 조종사가 탄생하고 2003년 전투함에 여군이 배치되는 등 군에서의 ‘금녀(禁女)구역’은 대부분 사라졌다. F-16 전투기 조종사인 김효선(26) 대위는 “여성이어서 불이익 당하거나 차별받은 적은 없다”며 “남성이든 여성이든 각자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공정한 경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군 간부 비율도 꾸준히 늘었다. 2000년 총 병력의 1.2%에서 2010년 3.5%로 높아졌다.

◇제도 보완해야=여성의 사회 진출이 확대되는 추세인데다 출산율 저하와 의무기간 단축으로 인한 병력자원 부족 현상 때문에 여군 수요는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미래전쟁은 하이테크전 성격이 강해지고 있어 역할이 확대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이런 이유로 군은 2020년까지 여군 비율을 장교는 7.7%, 부사관의 경우 5.5%로 높일 계획이다.

군 전문가들은 여군의 효율적 운용을 위해서는 제도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우선 보직관리가 보다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현재 국방부와 합참에서 과장급으로 근무하는 여군은 각각 1명에 불과할 정도로 여군은 야전부대 작전참모나 각군 본부 주요 부서에 근무할 기회가 적다. 또 육군 보병에서는 아직 여성 장군이 배출되지 않았다.

국방부 여성정책책임관 김용기 인사복지실장은 “여군의 권익 증진과 양성평등 문화 정착 차원에서 만 12세 이하 자녀의 육아를 위해 탄력근무제를 실시하는 등 보육정책 지원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