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김용철] 고위공직자 청문회 더 엄격하게
입력 2010-09-05 09:17
8·8개각에 따른 인사청문회 결과 김태호 총리후보자와 신재민, 이재훈 장관후보자가 물러났다. 지난 2일에는 국회가 본회의를 열어 민주당 강성종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전격 처리했고, 한나라당은 강용석 의원에 대한 제명안을 최종 의결함으로써 고위 공직자의 도덕성과 청렴성에 대한 민심의 거센 요구에 백기를 들고 말았다. 이 와중에 딸의 공무원 특채 논란으로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사퇴했다.
최근에 일어난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이명박 대통령이 제기한 공정사회 건설에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공감할지 걱정스럽다. 현재의 민심을 기준으로 국민이 생각하는 고위 공직자의 도덕적 기준을 공직자 또는 후보자들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 국민들은 공직자의 도덕성과 청렴성의 기준을 높게 잡고 있는데 당사자들은 인식하지 못하거나 적당히 청문회만 잘 넘어 가면 된다는 안이한 생각을 하는 것이다.
국민 기대에 지도층 못따라가
흔히 인사청문회는 정책수행능력과 전문성을 검증해야 한다고 하나 현행 우리나라 청문회제도 하에서는 짧은 기간 동안 지도자로서의 리더십 등을 폭넓게 검증하기란 쉽지 않다. 결국 당사자의 도덕적 자질과 대인관계, 재산 형성과정 등 개인적 사안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인사청문회는 기간을 대폭 늘리고, 자료제출에 대한 실효성 있는 장치가 필요하며, 공직 후보자 진술의 진실성 확보를 위한 처벌규정도 명문화해야 한다. 미국의 고위 공직 후보자에 대한 상원의 인사청문회에서도 도덕성, 개인의 성격, 재산증식 과정, 사생활 문제까지 폭넓고 세밀한 조사를 하여 국민정서에 너무 반할 경우 자진사퇴하거나 지명을 철회하는 것이 보통이다. 우리보다 더 혹독하고 엄격한 검증절차가 진행되는 것이다.
청와대가 청문회에 따른 민심을 수용해 일부 후보자의 자진사퇴를 수용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앞으로 총리는 모험적인 개혁을 추구하는 불확실한 실험형 후보보다는 혼란스러운 국민의 마음을 넓게 포용하고, 사회계층 간 갈등도 통합하고 국정 경륜도 충분히 갖춘 자기 헌신형 후보가 기용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총리직을 대통령이 되기 위한 징검다리쯤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인사청문 과정에서 적당히 넘어가 운이 좋으면 임명되고 운이 나쁘면 낙마한다는 인식이 국민들 사이에 퍼진 지 오래 되었다. 이번 정치권과 유 장관 사태를 보면서 ‘이것이 공정한 사회로 가는 것인가?’라는 자조가 나오는 상황이다.
이러한 국민들의 자조가 지속된다면 법치주의가 무너지는 것이고, 결과적으로는 민주주의가 크게 위협받는 과정을 국민들은 고위 공직인사의 사퇴를 지켜보면서 학습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법의 지배에 근거하는 정치제도인데 국민들이 고위직 인사가 불공정하다고 판단한다면 민주주의가 작동되기 위한 근본조건이 훼손되는 것이다. 정치 불신을 포함하여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부정적 이미지는 어떤 정책이 국민 개개인에게 경제적 손실이나 생활에 불편을 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도덕성 청렴성 기준 높여야
그러나 그보다도 현재 벌어지는 공직후보자들의 도덕성과 윤리적 흠결에도 임명이 강행되거나 이들에 대해서만 이중 잣대를 허용한다면 특권계층을 향한 국민들의 상대적 허탈감과 심리적 차별감은 더 커질 것이다. 개인적 입신 없이 부정과 비리로 얼룩진 일부 공직 후보자들을 보면서 정부는 국민들에게 민주주의와 국가발전을 위해 무엇을 요구할 수 있겠는가.
이제 국민정서에 상응하지 않고 기대수준에 부합하지 않는 공직자나 그 후보자들이 운 좋으면 넘어갈 수 있다는 생각을 갖지 않도록 더 엄격한 인사 검증시스템이 필요하다. 공정한 인사는 이명박 대통령이 제기한 공정한 사회의 출발점이다.
김용철 부산대 정치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