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명성황후로 살아 온 14년… 슬프면서도 행복하였어라”

입력 2010-09-05 17:30


‘명성황후’ 이태원(44)이 황후 자리에서 물러난다. 이태원은 올해로 공연 15주년을 맞는 뮤지컬 ‘명성황후’에 14년간 출연하며 작품을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1997년 명성황후 역에 발탁된 그는 뉴욕 링컨센터 공연에서 큰 호평을 이끌어냈고, 2004년 캐나다 토론토 공연에서 “이태원은 생명과 바꿀만한 목소리와 강렬한 연기로 가슴을 미어지게 한다”는 현지 언론의 평가를 받기도 했다.

마지막 무대를 준비 중인 그를 첫 공연이 시작된 지난 1일 성남아트센터에서 만났다. “나이 먹었다고 그만 하래요.” 왜 그만 하냐는 질문에 그는 농담으로 받아쳤다. “공연 10주년 때부터 15주년 될 때까지만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만할 때도 됐죠. 명성황후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다른 걸 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어요. 더 늦기 전에 다른 것도 시작해야죠.”

14년이나 같은 배역을 해왔지만 공연 시작 전 느끼는 긴장은 여전한 듯 했다. 마지막 공연에 대한 소회보다는 “실수하지 말고 유종의 미를 거둬야겠다는 생각뿐이다”라는 모범답안이 돌아왔다.

사실 이태원은 무대에 설 정도의 몸 상태가 아니다. 특히 무대에서 노래를 소화해야 하는 뮤지컬 배우에게는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는 성대결절 판정을 받아 공연하기가 힘들 정도다. 이태원은 “마지막이라 더 잘하고 싶은데 속이 많이 상한다.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데 어쨌든 이번 공연은 버텨보려고 한다”라며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이태원은 ‘명성황후’를 하면서 “외국 공연에서 외국인들이 한국을 알아줄 때, 교포들에게 한국인의 자부심을 불어넣어 줄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돌아봤다. “97년 뉴욕에서 처음 공연할 때는 ‘니네가 해봐야 얼마나 하겠냐’는 분위기였어요. 당연히 관객도 한국 교포가 90%였고요. 그런데 2004년 캐나다에서 할 때는 외국인이 90%였어요. 공연이 훌륭하다고 알아주고 인식이 바뀐 거죠. 초창기에는 열흘 정도 공연했는데 나중에는 4주씩 해도 공연이 잘 됐어요.”

지난해 명성황후 시해범들이 많이 거주했던 일본 구마모토를 찾아 공연한 것도 뇌리에 강하게 남아있다. “가슴이 아팠어요. 공연이 끝나고 일본 사람들을 인터뷰 하는데 ‘이런 역사가 있는지 몰랐다. 이렇게 잘못했는지 몰랐다. 정말 미안하다’ 이런 말을 들을 때 마음이 짠했어요.”

그는 이제 새로운 변신을 할 계획이다. 몸 상태는 좋지 않지만 휴식 없이 바로 다음 작품에 임할 정도로 변신에 대한 열망도 강하다. “11월부터 시작하는데 코미디 작품이에요. ‘명성황후’ 끝나자마자 연습을 시작해요. 다행히 이 공연만큼 힘들지는 않을 거 같아요.”

이태원은 “계속 변신해서 ‘저 배우가 ‘명성황후’에 나왔던 이태원 맞아?’ 하는 소리를 듣고 싶다”고 말했다.

이태원이 마지막으로 출연하는 명성황후는 19일까지 성남아트센터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된다(02-2250-5900).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