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청기 무작정 사용은 위험… 자칫하면 중이염 더 키운다
입력 2010-09-05 17:39
어렸을 때부터 양쪽 귀에 중이염을 앓아온 최모(57)씨는 소리가 잘 들리자 않자 무작정 보청기를 구입해 착용했다. 보청기가 청력 회복에는 도움이 됐지만 중이염을 방치하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 병이 악화돼 중이내 염증이 고막을 녹였고 고름이 흘러나와 보청기를 망가뜨렸다. 게다가 귓속 염증으로 인해 청신경과 이관 등이 손상을 받아 어지럼증과 메스꺼움 증상이 나타나 병원을 찾았다. 진단 결과 양쪽 귀의 고막에 구멍이 난 상태였다. 상태가 심한 오른쪽 귀는 급히 고막을 다시 만드는 수술을 받고 보청기 착용 없이도 소리를 잘 들을 수 있게 됐다. 의사는 “왼쪽 귀도 수술을 통해 청력 회복을 기대할 수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고령화와 소음 환경에의 빈번한 노출 등으로 소리나 말을 잘 듣지 못하는 난청 환자들이 급증하면서 보청기 착용 인구도 크게 늘고 있다. 하지만 난청의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지 않고 무턱대고 보청기부터 맞추면 자칫 병을 키우거나 보청기 착용 효과를 보지 못할 수도 있어 주의가 요망된다.
귀 전문병원인 소리이비인후과가 2009년 내원한 보청기 착용자 1967명을 조사한 결과, 7.7%(153명)가 만성 중이염 등이 문제돼 수술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병원 박홍준 원장은 5일 “난청이 중이염과 같은 질환에 기인한 것이면 수술 치료로 청력 회복을 기대해 볼 수 있는 상황임에도 보청기 사용을 통해 일단 잘 들린다고만 생각해 질환에 대한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면서 “듣는 것이 불편하다고 느낄 때는 반드시 이비인후과적 진료를 먼저 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시말해 질병 치료를 먼저 하고 난청이 남았다면 그 다음에 보청기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 특히 평소 잘 들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소리가 들리지 않는 ‘돌발성 난청’은 치료 결과가 서서히 나타나는 경우도 있어 성급히 보청기 착용을 결정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난청은 소리를 신경계로 전달하는 고막이나 뼈 구조물 등에 이상이 생기는 ‘전음성 난청’과 달팽이관부터 청각 중추에 이르는 부위에 문제가 생겨 들리지 않는 ‘감음신경성 난청’으로 나눌 수 있다. 중이염이나 고막 천공, 이소골 손상, 진주종, 이경화증(중이뼈의 굳음) 등으로 인한 것이 전음성 난청에 해당된다. 이 경우 약물, 수술 치료 등으로 고막 등 연결 구조물을 새로 만들어 주면 보청기 없이도 청력 회복이 가능하며 의학적 처치 후 보청기를 사용하면 청력 회복 효과가 더 높아진다. 신경 손상이 원인인 감음신경성 난청은 곧바로 보청기나 인공와우이식술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이비인후과 박문서 교수는 “특히 주변 뼈를 녹이고 뇌를 침범하기도 하는 ‘진주종’은 고막 안쪽에 잘 안보이게 숨어 있는 경우가 많아 전문의가 아니면 진단이 힘들다”면서 “이럴 때 보청기를 착용하게 되면 나중에 치료하기가 훨씬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만성 중이염의 경우엔 중이 안쪽에서 고름 등 염증 분비물이 밖으로 흘러나와 보청기를 못쓰게 만들 수 있다. 또 보청기 착용으로 귓구멍이 막히면 환기가 안되고 고름이 나오지 못해 염증이 더 심해지며 곰팡이가 생길 수 있다. 박 교수는 “중이염은 처음에는 통증이 없고 또 고름이 조금씩 나올 때는 귓구멍 안에서 말라버리기 때문에 알지 못하고 지내는 수가 많다”면서 주의를 당부했다.
보청기는 이비인후과 전문의의 의학적 진단 및 치료를 받고 정확한 청력평가 후 청각전문가인 청능사와 충분한 상담을 통해 자신의 난청 특성에 맞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
한림대 성심병원 난청클리닉 김은옥 청각학 박사는 “보청기는 관리 정도에 따라 7∼8년 까지 사용 가능하며 보청기를 구입할 때는 전문성을 갖춘 센터나 병원을 이용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말했다. 착용 후 6개월마다 청각 검사나 귀 검진을 받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