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옥한흠 목사① 김원배 목사

입력 2010-09-05 12:24


내가 만난 옥한흠목사

에큐메니칼 진영에 속한 필자가 옥한흠 목사님을 만난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였다. 11년에 걸친 독일 체류기간을 마치고 귀국한 필자는 한국 교회를 배우기 위하여 몇몇의 교회들을 탐방하는 기회를 가졌다. 그 중 사랑의교회를 탐방하는 가운데 복음의 깊이를 담지하고 있으면서도 참신한 선교의 열정으로 가득 찬 교회의 모습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평신도를 깨운다’는 목사님의 책을 읽으면서 새 시대가 요구하는 교회는 ‘바로 이것이다’라는 공감을 갖게 되었다. 교회 활성화를 통한 하나님나라 운동의 새로운 좌표를 찾던 필자가 속한 교단의 목회자들은 21세기 목회자협의회 창립모임에 옥 목사님을 주제강사로 초청하였다. 몇 번이나 사양하셨던 목사님은 우리들의 계속되는 강청에 끝 내 응낙하셨다. 목사님은 우리에게 꼭 해주고 싶은 얘기를 WCC의 경우를 들어 말씀하셨다. WCC가 평신도를 선교의 주체로 파악한 것은 매우 선구적인 발상이었으나 그들을 의식화만 시켰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양육하는 데 실패했기에 진보진영의 교회의 위기가 초래된 것이라는 요지의 말씀이셨다.

옥 목사님은 후에 발제를 진지하게 경청하는 목회자들의 모습에 진한 감동을 받았다고 회고하셨다. 목사님은 어느 모임에서 당시를 언급하면서 “기장 목사님들은 머리에 뿔이 난 사람들”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하는 바람에 그 자리에 동석했던 여러 교단에 속한 목회자들이 박장대소하고 웃었던 일이 기억난다. 옥 목사님은 그 후 그와 생각을 같이하는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교회갱신협의회’를 만드셨는데 그 동기가 기장 목회자들과의 만남 때문이었다고 회상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목사님은 이 모임에 참석한 목회자들의 진지함과 열정을 지켜보면서 신앙이 없는 사람들도 저렇게 교회갱신을 통한 건강한 교회를 위해 열심인데 우리는 무엇인가 하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미 조직되어 교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던 통합의 바른교회실천목회자협의회를 비롯한 장로교단들의 갱신운동은 ‘장로교 목회자 협의회’로 발전되었고 얼마지 않아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의 창립으로 이어졌다. 1998년 12월 사랑의교회에서 1000여명의 목회자들이 운집한 가운데 출범한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는 한국 기독교 사상 처음으로 에큐메니컬 진영과 복음주의 진영에 속한 목회자들의 협의회였다.

창립 당시 우리를 하나로 묶어준 공감대는 한국교회의 전진을 가로막는 닫힌 진보와 닫힌 보수를 넘어 열린 진보와 열린 보수의 만남이 절대적으로 요청된다는 것이었다. 옥한흠 목사님을 상임대표회장으로 추대하고 출범한 한목협은 지난 12년 동안 한국교회의 일치, 갱신, 섬김을 목표로 설정하고 이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진력하는 가운데 한국사회에 개혁을 위해 몸부림치는 한국 기독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믿는다. 옷로비 사건 등으로 기독교의 이미지가 땅에 떨어졌을 때 “하나님과 국민 앞에 우리 자신을 고발합니다”라는 제하의 죄책고백을 통하여 한국교회의 죄를 대신하여 참회하였던 한목협의 선언은 많은 사회적인 반응과 공감을 일으켰고 이 죄책고백의 중심에는 옥한흠 목사님이 서 있었다.

옥 목사님은 한목협을 통한 교회갱신과 일치 운동에 참여하기 전에는 사랑의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제자훈련사역을 통해 건강한 한국교회운동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족적을 남기신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얼마나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를 통해 한국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위해 헌신하였는가 하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필자는 옥한흠 목사님이 한목협의 대표회장으로 섬기시는 10년 동안 상임총무로서 목사님과 함께 한국교회 일치와 갱신을 위해 헌신했던 시간이 얼마나 값지고 보람된 시간이었는가를 회상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삶을 닮은 겸손한 인품의 소유자이신 옥 목사님이 아니었다면 15개 교단에 속한 목회자들이 한 뜻 안에서 한국교회의 일치와 갱신과 섬김을 위한 꿈을 공유하며 한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옥 목사님은 쉽게 근접하기 어려운 지도자이나 한번 신뢰하고 믿는 사람은 끝까지 신뢰하는 성격의 소유자이시다. 그분은 한번 마음을 준 사람에게 그의 권한을 믿고 위임하는 탁월한 리더십을 소유한 분이다. 그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그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고 성장할 수 있는 비결이 여기에 있다고 믿는다.

목사님을 회고하면서 꼭 언급하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한목협 대표회장으로서 섬기는 동안 ‘한국교회의 연합을 위한 교단장협의회’의 탄생을 위해 헌신한 목사님의 업적이다. 옥 목사님의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겸손한 인품과 지도력이 아니었다면 26개 교단이 참여하는 ‘한국교회연합을 위한 교단장협의회’는 결코 창립될 수 없었을 것이다. 교단장협의회를 통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파송한 대표들로 18인 위원회를 구성하고 한국교회 연합을 위해 수많은 논의 과정을 거친 가운데 1907년 평양 대부흥 100주년이 되는 2007년에 양기구가 통합하기로 한 로드맵이 합의됐다. 교회사에 기록될 이 놀라운 성취는 자기 이름을 내세우지 않고 한국교회 연합을 위해 헌신하였던 옥 목사님의 한국교회를 향한 사랑과 기도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오늘 한국 교회 안에 이루어지고 있는 다양한 연합운동의 결실은 옥 목사님의 눈물의 기도와 헌신이 밑거름이 되어 이루어진 결과라고 필자는 감히 증언하고 싶다. 그가 뿌린 헌신의 씨앗은 언잰가 30배,60배 ,100배의 열매로 나타날 것으로 믿는다.

옥 목사님과의 만남이 없었다면 필자가 본격적으로 목회자의 길로 뛰어드는 결단을 하는 일은 불가능했다고 생각된다. 많은 나이에 기관 목사사역을 마감하고 목회지로 떠나는 필자에게 “한 3년 정도 되어야 목회자 체질이 될거요!” 걱정하던 목사님을 뒤로하고 갈릴리 목회를 감당한 지 3년이 넘어서고 있다. 당시는 이해되지 않던 말이 지금에 와서는 깊이 공감이 되고 있다. 목회 3년이 되는 시점에서 드린 메일에 대한 답장에서 목사님은 “교단의 중책을 맡은 때도 귀한 사역이었지만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해 생명을 거는 목회야말로 이 세상의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임을 명심하십시오”라고 격려해 주셨다. 지난 3년여 기간 동안 필자의 목회를 위해 멘토의 역할을 감당해 주셨고 필자가 개척한 예원교회의 창립에도 귀중한 헌금으로 격려해 주셨다.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드린 메일에 대한 답장을 통해 그 사이 영성이 깊어짐을 느낄 수 있다고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폐암수술 후 목사님의 건강이 옛날과 같지 않음을 전화통화를 통해 감지할 수 있었다. 매일 아침 드리는 새벽기도 가운데 히스기야 왕에게 베풀어주셨던 은혜를 목사님에게도 베풀어 주시라는 간절한 기도를 드려왔다. 필자가 드리는 간청기도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하나님, 옥 목사님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하나님께서 그를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을 유감없이 실천하셨습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아직도 그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그가 그냥 우리 가운데 있는 것만으로도 족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한국교회는 옥한흠 목사님과 같은 원로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히스기야 왕에게 베푸셨던 은총을 베풀어 주시사 불꽃같은 눈으로 한국교회를 지켜보게 하시고 그 분이 가지신 겸양한 지도력과 영향력으로 한국교회가 하나로 연합되는 역사를 보게 히옵소서!’

실로 옥 목사님은 후회 없는 삶을 사셨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선한 업적을 남기셨다. 그의 선한 존재에서 나온 업적으로 오고 오는 세대가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필자가 영향을 받은 20세기 개혁교회신학을 대표하는 신학자 칼 바르트는 그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두 스승이 거의 같은 시기에 세상을 떠났을 때 “과거와 미래”라는 유명한 수상을 남겼다. 그가 진정으로 사랑하고 존경했으나 안타깝게도 복음을 기껏해야 민족 중흥의 이데올로기로 상대화하는 데 그친 스승의 삶에 대해서는 “과거”라고 명명했다. 안타까운 심정으로 그는 그의 삶을 “현재가 되기도 전에 과거가 되어버리고 말았다”고 안타까워했다. 그와 반면에 다른 한 스승의 삶을 “미래”라고 명명했다. 왜냐하면 그의 삶 가운데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역사가 상대화 되지 않고 재현되어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말하기를 그가 사랑하는 스승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와 함께 미래 가운데 영원히 살아남게 될 것이라고 고백했다.

필자는 사랑하는 옥한흠 목사님의 삶 가운데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역사가 그대로 재현되어 나타났음을 믿는다. 그래서 필자는 옥 목사님의 삶을 “미래”라고 명명한다. 옥한흠 목사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와 함께 미래 가운데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 영원한 하늘나라와 그리고 우리들 가운데 그리고 오고 오는 복음의 역사 가운데 말이다.

한 그리스도인의 삶과 영광이 도대체 무엇인가? 우리들이 아무리 거대한 것을 추구하고 위대한 공적을 남긴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삶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의 역사가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옥한흠 목사님이 걸으셨던 길을 따라 우리들의 삶속에도 그리스도의 현존과 역사가 재현되는 제자의 길을 향하여 힘있게 달려가자! 임마누엘!!

<김원배 목사·목포 예원교회 담임, 전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상임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