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금융지주 라응찬-신상훈, 28년간 동지에서 ‘원고-피고’ 적으로… 진실은 뭘까

입력 2010-09-03 20:34


28년간 한솥밥을 먹었던 두 사람이 서로에게 칼을 겨누며 갈라섰다. 두 사람은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신생 은행에 불과했던 신한은행을 국내 순이익 최대를 자랑하는 금융그룹으로 키워낸 창업 공신이다. 주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절대 권력을 행사해온 1인자는 2인자를 향해 회사돈을 횡령했다며 검찰에 고소했고, 당사자는 자신을 모함한다며 법정 공방을 예고했다.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과 신상훈 신한금융지주 사장 얘기다. 누구 말이 진실일까.

라응찬은 왜 고소했나… 경영권 도전 싹 자르기?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3일 평소처럼 오전 9시쯤 서울 태평로 신한은행 본점에 검은 양복을 입고 모습을 드러냈다. 후계 구도 등과 관련된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지만 굳은 표정으로 대답 없이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28년간 함께 국내 굴지의 금융그룹을 키워온 노 은행가는 몹시 고단해 보였다.

“모국에 은행다운 은행을 만들자.” 1982년 일본에서 성공한 재일동포들이 뜻을 모아 국내에 한 은행을 만든다. 점포 3개짜리 미니은행이 당대 최고 수익률의 금융지주로 발전하는 동안 그들은 여전히 대주주 자리를 지켜왔다. 국내 금융업계가 관치(官治) 논란에 시달렸던 것과 달리 신한지주가 한 발짝 비켜서 있을 수 있던 것도 이처럼 공고하게 확립된 지배구조 덕이었다.

그 중심에 라 회장이 있다. 그룹 오너가 경영권을 세습하는 사기업과 다르게 그는 전문경영인임에도 불구하고 91년 이후 19년간 지주 및 은행의 최고 경영자로 근무해 왔다.

73년 대구은행에 근무했던 그는 김준성 행장을 보좌해 일본에 건너갔다가 성공한 재일동포 사업가 이희건(현 신한은행 명예회장)씨를 만난다. 이후 77년 재일동포들이 세운 제일투자금융에 영입된 뒤 신한은행을 설립한다.

“서울 명동 옛 코스모스 백화점에 본점 문을 연 날이 내 생에서 가장 기쁜 날이었습니다.” 신한은행의 첫 발자국을 뗀 날을 그는 수차례 이렇게 회고해 왔다. 당시 상무에서 91년 신한은행장에 오른 그는 이후 눈부신 성과로 4연임에 성공하며 단단한 ‘라응찬 체제’를 구축했다. ‘신한=라응찬’이라는 평가가 곳곳에서 쏟아졌다.

이번 신상훈 사장의 배임 및 횡령 고소건에는 범죄혐의 외에 이러한 배경도 녹아 있다. 사실상 라응찬 1인 지휘 체제에 수많은 2인자들이 오래 버티지 못하고 자리를 떴다. 라 회장과 신진세력 간 내부 권력다툼의 시작이다.

신 사장 역시 정치권에 라 회장의 차명계좌를 알렸다는 소문이 지난해 말부터 떠돌기 시작했다. 최근 중국 내 이사회에서는 인사 문제를 두고 라 회장과 신 사장 간 갈등설이 불거졌다. 급기야 신 사장이 라 회장 퇴진을 위해 정치공작을 벌이고 있으며 이백순 신한은행장이 이를 방어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신구 세력 간 음해성 루머가 돌고 조직이 흔들리며, 자신의 경영권도 위협받는다.’ 신한 브랜드를 분신처럼 여기는 라 회장이 결국 형사고소를 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이 때문이라는 게 신한지주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은둔의 기업가’로 평가받는 그가 지난달 미소금융 지점 개소를 이유로 11년 만에 언론 앞에 나선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시선도 제기됐다.

일부에선 라 회장이 2013년까지의 임기를 마치기 위해 신 사장을 내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지만 라 회장은 지난 2월 4연임 직후 측근들에게 “임기를 모두 마치지 않겠다”고 밝혀온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무혐의 처분했던 금융실명제법 위반 혐의에 대해 금융감독원이 나서서 조사를 하고 있는 점도 부담이다.

신상훈은 왜 반발하나… 배임은 ‘내치기’ 명분용?

신상훈 신한금융지주 사장은 무척 곤혹스러워했다. 지난 2일 전화통화의 첫마디는 “신한 직원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럽다”였다. 굴지의 금융그룹을 키워낸 창업공신이 졸지에 비리혐의자로 전락하면서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이 묻어났다.

1968년 산업은행에 입사한 그는 82년 신한은행 창립멤버로 합류한 뒤 지주 사장까지 승진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2003년 신한은행장, 2006년 조흥은행을 인수한 뒤 통합은행장을 지냈다. 합병 후 고질적인 조직 갈등과 출신 은행 간 지분 챙기기가 없어 은행 인수·합병(M&A)의 교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1일에는 신한지주 설립 9주년을 맞아 ‘신한 웨이(Way)’를 선포하며 성공적인 미래를 이끌어 나가자고 강조했던 터다. 그랬던 그가 불과 하루 만에 형사사건 피고소인 신세가 됐다. 고소인은 그가 28년을 몸담았던 신한은행이었고, 그 결정을 내린 것은 라응찬 신한지주 회장이었다.

배임죄는 회사에 손해를 끼친 회사원을 처벌하는 규정이다. 최근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중징계를 받은 강정원 전 국민은행장은 해외 투자 실패 등으로 회사에 5300억원대의 손실을 입혔다. 반면 신 사장의 부실 대출액은 950억원, 이로 인한 충당금(떼일 것을 대비해 쌓아두는 돈)은 720억원 정도다.

신 사장은 “내부 심사과정과 추후 금감원의 정기조사에서도 대출 심사에 문제가 없다고 결론났다. 이 정도 손실이 문제라면 모든 부실대출이 다 행장 책임이라는 말이냐”고 물었다.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도 “해외 투자 등의 경영 오판이었다면 몰라도 은행 기본업무인 여신 심사와 관련해 행장에게 책임을 묻는 건 가혹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만약 그렇다면 부실 부동산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로 수천억~수조원대의 손실을 입힌 은행장들은 전부 배임 혐의로 처벌해야 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친인척의 관련 여부가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은행 측은 대출과정에서 “친인척이 관련됐다”고 밝혔지만 그가 직접 대출을 받았는지 혹은 브로커로 활동했는지 등은 밝히지 않았다. 반면 신 사장도 “친인척이 대출을 받지 않았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관계에 대해서는 “일일이 답하기 어렵다. 법정에서 밝히겠다”고 말했다.

15억원 횡령 혐의는 ‘보험용’이라는 평가다. 950억원의 배임 혐의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추가로 고소했을 것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확고한 2인자였던 신 사장이 창업주인 이희건 명예회장의 자문료 등을 굳이 횡령하려 했는지는 미지수다.

이번 고소건을 내부 권력다툼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은 이유다. 신 사장은 “(차기 회장직을) 욕심내는 사람이 많았다. 더 할 말이 없다”고 했다. 1인자가 3인자와 손잡고 2인자를 없애려 한다는 루머에 대해선 그는 “사람들이 다 그렇게 얘기하니까…. 그리 볼 수는 있겠다”고만 했다.

신한은행 김국한 노조위원장은 “내부 문제가 외부에 공개돼 은행이 타격을 입었다. 검찰 조사가 끝날 때까지 이사회를 보류하고 조사 결과에 따라 신 사장이나 은행 중 책임을 져야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준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