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현지 영어교육자 4인이 말하는 글로벌 시대 ‘자녀 교육법’

입력 2010-09-03 10:43


“기러기 아빠요? 아이 망치는 지름길이죠”

우리 아이 영어 잘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귀가 번쩍 뜨일 만한 말이다. 지난달 30일부터 사흘간 부산에서 펼쳐진 제10회 한민족여성네트워크 세미나에 참가한 미국 현지 영어 교육자 4명에게 그 방법을 물어봤다. 뉴욕시 교육국 권현주(64) 교사, 시카고 교육청 DFSS 박란실(61) 장학관, CEL 영어전문학교 이형천(72) 원장. 국립국제교육원 EPIK 미국현지사무소 이영신(47) 대표는 지난달 29일 부산 파라다이스호텔 로비에서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영어교육 방법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대에 알맞은 자녀 교육방법을 들려 주었다. 권 교사와 박 장학관은 이중언어연구관 및 교사를 지냈고, 이 원장은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는 이들을 위한 사설교육기관 CEL을 25년째 운영하고 있는 어학교육 전문가다. 이 대표는 서울시 교육청 소속 현직영어 교사연수지원을 하는 등 우리나라 영어교육의 실상을 꿰뚫고 있는 현지 어학 전문가다.

△박란실=미국에 오는 한국학생들을 보면 자신감이 넘쳐 보기 좋습니다. 우리 때와는 다릅니다. 발음도 좋고….

△이형천=유학 오는 학생들을 보면 확실히 좋아졌습니다.

△이영신=원어민 교사들을 채용한 덕분 아닌가 싶습니다. 정부의 영어강화프로그램 덕분에 시골지역 초등학교에까지 원어민 교사들이 나가 있는 것으로 압니다.

△권현주=발음이 중요하긴 하지만 전 문법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요즘 아이들 정말 똑똑하지만 조금 지켜보면 문법을 제대로 익히지 않은 데다 개념이 부족해 오류가 많습니다. 미국에서도 문법을 다시 중시하고 있습니다.

△박=예전에 비해 어휘력도 좀 떨어지는 것 같긴 합니다. 단어를 많이 아는 것이 힘이 됩니다. 문법이 되돌아온다고 하는데, 단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미국 초등학교에선 단어시험을 다시 봅니다.

△영신=원서를 큰소리로 읽을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발음도 좋아지고, 어휘력도 늘고, 문법에도 도움 되지요.

△권=정말 책 읽기는 중요합니다. 처음 배울 때 제대로 된, 학문적인 영어를 배워야 합니다. 일상생활을 위한 회화 위주의 공부는 한계가 있습니다. 미국의 건국 이념 등 문화를 담고 있는 책이나 내셔널지오그래픽 같은 과학 잡지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형천=영어의 바다에 풍덩 빠지라고 했듯 현지에서 배우는 것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발음을 잘하기 위해선 초등학교 3, 4학년 때 2년 정도 유학 오는 게 좋습니다. 유학이 어렵다면 캠프도 효과적이지요. 경제적으로 부담이 크다면 원어민이 녹음한 테이프를 많이 듣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권=사춘기 이전에 익혀야 발음이 좋은 것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터무니없는 조기교육은 부작용이 심각합니다. 한국에선 우리말도 제대로 못하는 서너 살짜리에게 영어교육을 시킨다고 들었습니다. 모국어가 완전히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제2외국어를 배우면 혼동이 일어나 모국어도 제대로 못하게 됩니다.

△박=영어교육에 관한한 우리나라 부모들의 정성은 대단합니다. 극성에 가깝죠. 기러기아빠만 봐도 그렇죠. 연수나 지사 근무로 나왔다 귀국할 때 대부분 갈등을 겪죠. 아이들은 남겨 놓고 갈까 말까로. 저는 무조건 함께 귀국하라고 조언합니다. 청소년기까지는 부모 아래서 자라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권=기러기아빠는 아이들 장래를 망치는 지름길입니다. 아버지가 돈을 보내주니 돈 안 벌어도 편하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잘못된 학습(bed learning)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형천=자녀 영어교육만 생각한다면 사실 1년으로는 부족하지요. 최소 2년은 있어야 되는데, 안타깝긴 합니다.

△영신=영어는 수단일 뿐입니다. 영어만 잘하는 괴물로 키워져선 안 됩니다. 인성이 더 중요합니다. 아는 교수님이 박사 과정에 있는 한국학생들은 섬 같다고 하더군요. 공부는 잘하고 똑똑하지만 어울리질 못한다고요.

△권=어려서부터 또래들을 경쟁자로 교육시켜서 그런 게 아닐까요. 글로벌시대에는 성별 인종 계층 이 다른 이들이 팀워크를 이뤄 일해야 합니다. 그런데 상대를 경쟁자로 가르치니 큰일입니다. 또 자기보다 못 살거나 힘이 없는 사람, 소수민족을 업신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성향은 어렸을 때 바로잡아줘야 합니다.

△형천=초등학교 2학년 때 이민 온 우리 둘째 아이는 듀크대를 졸업하고 미국 장로교회 목사님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 아이의 성공은 고교 때 풋볼을 하면서 배운 협동정신이 바탕이 됐습니다. 이거 자식자랑이 됐네요.

△박=중요한 얘기입니다. 딸아이도 축구를 했어요. 협동심과 지구력을 기르는 데 그만입니다. 골프처럼 혼자 하는 운동보다 팀을 이뤄 하는 운동이 좋습니다.

△영신=더불어 하는 활동이 정말 중요하죠. 그런 데서 리더십을 키우게 되죠. 아마 한국 아이들은 축구 게임을 할 시간이 없을 걸요. 온종일 학원을 전전하며 시험 보는 기계가 돼 가고 있습니다. 공교육을 믿지 못하고, 학원에 의존하죠. 아이들은 공사 중입니다. 믿고 바라봐줘야 하는데…. 늦되는 아이도 있는데,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권=교육정책도 문제가 있습니다. 평준화를 잘못 이해하고 있어요. 미국의 평준화교육은 못하는 아이들을 특별예산으로 개별교육을 시켜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하향평준화를 하고 있으니 부모들이 자구책을 찾는 것입니다.

△박=부모 역할에 대해 잘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딸을 보면, 아이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뭔지, 뭘 하고 싶은지 알아보고 도와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입니다. 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딸을 교사로 만들었더니 결국 30대 중반에 다시 로스쿨을 다녔어요.

△영신=영어 단어 하나 더 외게 하는 것보다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야 아이의 생각 소질 적성을 알 수 있을 테니까요.

영어공부 잘하는 법을 듣고자 자리를 마련했으나 영어교육 전문가인 이들은 영어보다 인성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리고 부모 역할은 아이들 학원 보낼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그들의 꿈을 읽고 그것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는 결론을 냈다.

정리=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