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40년이 젊어진다면… 엘리아데 환상소설 ‘백년의 시간’

입력 2010-09-03 17:30


“벼락을 맞은 방식으로 봐서는, 당신은 그 자리에서 즉사하거나, 십에서 십오 분 안에 질식사해야 했어요. 최선의 경우라도 마비되거나 벙어리나 장님이 되었겠죠. (중략) 의사들과 치과 의사들 모두가 하는 말이 바로 그 말입니다.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31쪽)

백 년의 시간이 허용된다는 확신이 있다면 어떨까. 은퇴한 뒤에는 넘쳐나는 자유 속에서 익사해버리는 게 인간 아닌가. 루마니아 출신의 세계적인 종교사상가 미르치아 엘리아데(1907∼86)가 1981년에 출간한 환상소설 ‘백 년의 시간’(문학에디션 뿔)이 번역, 출간됐다. 이 비현실적인 작품은 공상과학 소설의 냄새조차 진하게 풍긴다. 2007년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이 ‘Youth Without Youth(젊음 없는 젊음)’이란 제목으로 영화화하기도 했다.

‘백 년의 시간’은 죽음에 부딪친 뒤 살아있을 시간을 확보하게 된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다. 일흔을 눈앞에 둔 도미닉은 부활절에 성당 뒤에서 벼락을 맞는다. 피부가 남김없이 타버린 상황에서 그는 기적적으로 살아나고, 회복과 함께 젊음을 되찾는다. 도미닉은 서른 살의 나이가 돼 삼십 년을 더 산다. 그 동안 그는 자신이 몰랐던 여러 동양의 언어를 구사하기도 하고, 한 여성과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원래대로라면 100살이 되었을 해 그는 오랜만에 고향에 찾아간다. 그런데 고향에서의 시간은 그가 벼락을 맞던 해인 1938년 성탄절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여러 가지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젊어진 도미닉은 어떤 존재인가. 탁월한 지적·언어적 능력과 기억력을 갖게 된 그는 핵전쟁 이후에 다가올 ‘인류의 미래’로 암시돼 있다. 그는 여전히 도미닉의 기억을 지닌 도미닉이지만, 스스로의 자아가 아닌 도미닉의 초자연적인 분신이기도 하다.

저자는 세계 각지의 문화와 종교에 대한 깊은 이해와 철학적 사유를 유감없이 소설에 펼쳐낸다. 저자가 그려낸 것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각국의 정치적 상황을 배경으로 한, 그러나 무엇이 꿈이고 무엇이 현실인지 알 수 없는 세계다. 주인공 도미닉이 겪는 일련의 사건들이 환상인지 실제인지를 판단하는 건 온전히 독자의 몫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소설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 자신의 존재와 시간이 과연 어디에 있는가에 대해서. 소설은 또한 발전하는 문명의 미래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도 보여준다. “핵전쟁이 터지고 나면, 서양 문명부터 시작해서 여러 문명들이 파괴될 것이다. 이러한 재앙은 틀림없이 인류가 지금껏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염세주의의 파도를 불러 일으켜서 비관론이 일반화되어 퍼질 것이다. 모든 생존자들이 자살의 유혹에 넘어가지는 않겠지만, 여전히 인간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고, 호모 사피엔스 종보다 우월한 인류가 가능하다고 소망할 만큼 활력을 간직한 사람들의 수는 아주 적을 것이다.”(117쪽)

도미닉의 지적·영적 능력이 워낙 뛰어난 것으로 묘사된 까닭에, 핵전쟁 이후의 신인류에 대한 저자의 전망은 낙관적이기까지 하다. 이는 책 뒷부분에 실린 중편 ‘다얀’에서도 확인된다. ‘다얀’은 젊은 수학 천재가 골고다 언덕에서 잠시 쉬려 했던 예수를 쫓아낸 인물 아하스베루스를 만나 세상의 멸망에 대한 최종 방정식을 발견하려 하는 내용이다. 이 이야기 속에서 멸망과 구원은 서로 통하며 진리는 신비나 비과학과 연결된다.

엘리아데는 독자들을 현실과 비현실, 지성과 신비, 동양과 서양 등 상반된 개념들로 탄탄하게 구축된 ‘백 년의 시간’ 속으로 인도한다. 덮고 나면 ‘꿈에 나비 되었다가 문득 깨어나자 장주 되었으니 장주가 나비 된 꿈을 꾸었는지 나비가 장주 된 꿈을 꾸는지 알 수 없다’는 장자의 말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