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추정 원칙 위배… 공무담임권 과도하게 침해”

입력 2010-09-02 21:48


헌법재판소가 2일 이광재 강원도지사의 직무수행을 막았던 지방자치법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가장 주된 이유는 헌법에 정해진 무죄추정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점이다.

헌법 27조 4항은 “형사피고인은 유죄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는 이 지사도 아직 판결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무죄추정의 원칙을 적용받을 수 있다.



위헌 의견을 낸 5명의 헌법재판관은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은 일상에서의 기본권 제한 같은 경우에도 적용된다”며 “형이 선고만 되고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자치단체장 직무를 정지시키는 것은 이같은 원칙에 반한다”고 판단했다.

공무담임권을 과도하게 제한해 기본권을 침해했다는 점도 지적됐다. 재판받고 있는 범죄의 직무 관련성이나 고의성, 죄질 등을 따지지 않고 금고 이상 형을 선고받았다는 것만으로 자치단체장을 직무에서 배제시키는 것은 공무담임권 침해라는 것이다.

1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았는데도 이 도지사를 뽑아준 지역주민의 선택을 감안해야 한다는 점도 제시됐다. 헌법불합치 의견을 낸 조대현 재판관은 “금고 이상 형을 선고받았더라도 자치단체장으로 뽑아준 국민 선거의 정당성이 무너지거나 직무를 계속 담당시키기 곤란한 경우가 아니라면, 형 확정 전에 직무를 정지시키는 것은 무죄추정 원칙 등에 반한다”고 판단했다.

공직의 윤리성·신뢰성 측면에서 국회의원도 지자체장과 비슷한 처지인데 자치단체장에게만 이 조항을 적용하는 것은 헌법상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점도 위헌적이라는 근거로 제시됐다.

그러나 합헌 의견을 낸 3명의 재판관은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큰 금고 이상의 형이 선고된 시점에서 주민 복리와 지자체 행정 운영에 구체적인 위험이 이미 발생한 것”이라며 “형 확정 전이라도 이 같은 위험을 배제하기 위해 자치단체장을 직무에서 배제시키는 것이 절실하다”는 의견을 냈다.

헌재 결정으로 이 도지사는 취임과 동시에 직무가 정지된 지 63일 만에 업무에 복귀했지만 남은 임기를 채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 도지사는 2004∼2008년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과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 회장으로부터 약 2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지난해 9월 1심에 이어 올해 6월 2심에서도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 추징금 1억1417만원을 선고받았다. 이 도지사는 지난달 초 대법원에 상고했고 현재 박시환 대법관이 주심을 맡아 심리 중이다. 이르면 올 연말쯤 내려질 상고심 판결에서 무죄가 선고되지 않는 한 이 도지사는 임기 4년을 채우기 어려울 전망이다.

김정현 기자 kj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