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문일] 지도자가 되는 공통의 길
입력 2010-09-02 18:01
‘깜짝 총리’의 출현을 비판적으로 언급했던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저주일까. 총리 후보 김태호 전 경남지사가 국회 청문회에서 낙마했다. 젊은이의 미숙함에 대해 실망이 컸던 만큼 다음은 파격 발탁이 아니라 무난하고 노성(老成)한 유명 인사 쪽으로 기울지 않을까 싶지만 예측은 여전히 어렵다. 총리뿐 아니라 대통령 자리도 다음엔 누구에게 돌아갈지 알 수가 없다. 쿠데타 같은 외부 요인이 아니라 각종 맥(脈)과 벌(閥) 등 내부 요인이 정정(政情)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자고 일어나면 낯선 인물이 등장하는 리더십 충원(充員) 행태는 우리나라 정치사의 뚜렷한 특징이다. 박정희 전두환의 등장이 전형적 예이고, 이회창 노무현도 정치적 무명(無名)에 가까운 상태에서 총리와 장관으로 발탁된 게 정치적 입신(立身)의 계기가 됐다. 이명박 대통령도 기업인에서 정치인으로 깜짝 변신했고, 국회의원으로서 좌절했다가 한나라당의 서울시장 후보로 발탁된 게 오늘에 이른 발판이 됐다.
중국의 길고 철저한 검증
이에 비해 중국은 김문수 지사 말대로 다음 세대 지도자로 ‘누구 누구’가 정해져 있다. 중국 지도부 차기 멤버는 2007년에 낙점되어 2012년에는 시진핑 국가주석- 리커창 총리 체제 탄생이 기정사실로 되어 있다. 김 지사가 말하고자 한 것은 중국은 안정된 리더십을 바탕으로 확고한 100년 설계 위에서 국가를 발전시키고 있다는 부러움이다.
사회주의 국가 중국의 리더십을 민주주의 한국과 수평 비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두 나라의 정치체제는 달라도 지도자 되기가 까다로운 점은 공통이다. 한국은 손바닥 뒤집듯 급변하는 민심의 바다에서 살아남거나, 인육사냥이라 불릴 만한 청문회를 통과해야 지위를 얻을 수 있다. 중국에서는 각급 행정 단위에서 실적을 쌓고 부정부패 덫에 걸리지 않아야 공산당 내부의 엄격한 심사를 통과할 수 있고 차세대 지도자 후보로 관리된다.
중국의 리더십이 안정됐다는 말을 듣게 된 지는 오래지 않다. 덩샤오핑이 생전에 ‘장쩌민 다음에는 후진타오’라고 순서를 정해둔 것이 리더십을 안정시켰다. 덩샤오핑의 안배가 끝나는 2012년 이후를 두고 벌어지는 집단지도체제 내부의 사정은 죽(竹)의 장막 속이다. 그러나 최근 번역 출간된 ‘시진핑 평전’(송삼현 옮김·지식의숲 발행)을 통해 중국 지도자가 성장하는 과정을 살필 수 있다. 공식 자료 중심으로 서술되어 장황한 감이 있지만 가공되지 않은 원재료의 진지한 느낌이 있다.
시진핑은 건국 원로의 아들로 이른바 태자당(太子黨)이지만 아버지 시중쉰이 문화혁명 때 반동으로 몰려 가정이 풍비박산됐다. 16세에 서북부 지방으로 하방(下放)되자 농촌생활에 적응을 못하고 도망치기도 했으나 곧 정신을 차려 농민과 잘 섞였고, 21세에 생산대의 서기가 되어 정치길에 들어섰다. 마오쩌둥 사후 아버지가 복권돼 베이징으로 돌아왔으나 얼마 안 돼 지방 근무를 자원했다. 현(縣)의 부서기에서 시작해 시(市), 성(省)을 거쳐 2007년 상하이시서기가 되기까지의 25년을 요약하면 뚜렷한 치적을 남겼다기보다 인화(人和)에 뛰어난 게 주목된다. 그의 리더십을 한 글자로 요약한다면 ‘온건할 온(穩)’이라 하겠다. 인화는 카리스마적 존재가 없는 중국 집단지도체제에 절대 필요한 미덕이다. 아버지의 후광(後光)도 작용을 했겠지만 결국 시진핑이 경쟁자인 리커창을 제친 이유는 능력보다 품성인 것 같다.
정치적 성장은 자신의 결정
시진핑의 경우 최고지도자 후보에 들 때까지의 긴 경력 전체가 자연스런 검증 기간이 됐다. 우리와 형식과 절차는 달라도 중국 역시 지도자 충원의 기본 원리는 검증인 것이다. 지난 청문회에서 사회 경력의 거의 전부를 관(官)에서 밥 먹은 어느 공직 후보가 쪽방촌 투기까지 했다는 것은 운을 스스로 포기한 행위다. 불법사찰 논란을 빚고 있는 젊은 국회의원들도 정치적 미래를 멀리 내다본다면 무엇부터 해야할 지는 자명하다. 지도자 되려는 이, 오로지 근신해야 할 뿐이다.
문 일 논설위원 norw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