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시인 李箱 족두리를 쓰다… 탄생 100주년 맞아 미공개 사진·육필원고 등 공개
입력 2010-09-02 21:19
천재 시인 이상(李箱·1910∼1937)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발자취를 한눈에 보여주는 다수의 미공개 사진이 공개됐다. 오는 10일 ‘2010 이상의 방(房)-육필원고·사진전’을 개막하는 영인문학관(관장 강인숙)은 2일 문학평론가 이어령씨가 평생 수집한 이상의 미공개 사진과 이상의 부인이었던 변동림 여사(1916∼2004)와 생전에 주고받은 편지 등 한국문학사의 공백을 메울 희귀 자료를 전격 공개했다. 강인숙 관장은 이어령씨의 부인이다.
공개된 사진들은 이상의 어머니 박세창 여사를 비롯, 보성고등학교와 경성공고 시절의 이상을 망라하고 있다. 촬영 장소도 파고다공원과 남산 약수터, 세검정 옛터 등으로 다양해 마치 이상의 감춰진 앨범을 보는 듯하다. 사진들 가운데는 이상이 1934년 친구 김해림의 혼인식에 들러리로 참석한 모습과 1924년 경성공고 2학년 때 남한산성으로 원족을 간 한국 학생들만의 야유회, 그리고 경성공고 교련 시간에 장총을 들고 있는 모습 등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경성공고 재학 당시 연극반으로 활동했던 이상은 족두리를 쓴 여인의 모습으로 동창생 오석환(한국희관사장)과 원용석(전 경제기획원 장관) 사이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강 관장은 “이어령 선생은 1960년대부터 서지학자를 직접 고용해 뒷골목 고물상까지 뒤지게 해서 이상의 육필 원고들을 수집했으며 이번에 공개하는 사진들은 대부분 원용석씨의 앨범에서 찾아낸 것으로 이미 고증을 거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령씨는 수집 과정에서 이상의 유일한 장편소설인 ‘12월12일’을 발굴, 공개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회에는 뉴욕에서 일시 귀국했던 이상의 전 부인 변동림 여사(후일 이름을 김향안으로 개명하고 김환기 화백과 재혼)가 1987년 이어령에게 보낸 편지도 공개된다. 변 여사는 같은 해 11월 14일자 편지에서 “이어령 선생. 동봉하는 사진들 보시면 한용진 조각가의 작품을 짐작하실 줄 압니다. 그리고 에스키스를 보시면 문학비가 어떻게 조형될 것을 짐작하실 줄 믿습니다. 대석 사면 중 전면에 ‘문학비’, 후면 또는 양 측면에 선생의 생각하시는 ‘이상’ 글들을 넣어주십시오. 가벼운 마음으로 떠납니다”라고 적었다.
강 관장은 “이 편지는 향안 여사가 이어령 선생에게 이상의 문학비에 대한 것을 부탁하기 위해 쓴 것으로 디자인과 레이아웃에 대한 것까지 직접 챙겼으면서도 그녀는 문학비 제막식에 나타나지 않았다”면서 “(결혼 후 몇 달 만에 도쿄로 떠난) 이상에 대한 노여움과 그의 문학에 대한 평가를 구분할 줄 알았던 것처럼 환기의 아내로서의 설 자리도 깔끔하게 지키면서 이 일을 마무리 했다”고 말했다. 조각가 한용진씨는 1986년 6월 변 여사의 주문대로 문학비를 설계했으며 이에 따라 1987년 12월 높이 3m50㎝, 둘레 앞 1m, 둘레 옆 2m50㎝의 크기의 문학비가 서울 방이동 보성고교 교정에 세워졌다.
전시회에는 1980년대 뉴욕에서 2년 동안 체류했던 문정희 시인이 직접 김향안 여사를 만난 짧은 소회도 공개된다. 문씨는 “그해 여름, 뉴욕 소호에서 만난 그녀는 차갑고 도도했다. 그녀는 오래 전에 살았다는 시떼섬의 추억과 퐁피두의 전시를 꿰뚫고 있었다. ‘사람의 몸에 그렇게 많은 눈물이 있는 줄 몰랐어.’ 영어와 프랑스어가 능한 그녀의 한국말은 더 아름다웠다”고 적었다.
강 관장은 “이상은 카프카처럼 혼돈의 시대에 태어나 너무나 짧게 살다가 목숨을 거두었기 때문에 그는 그의 난해한 문학을 미완성으로 남겨 놓아야만 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문학은 지금 한국문학사에서 지울 수 없는 하나의 정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인문학관은 11일부터 11월 6일까지 매주 토요일 이상의 문학세계를 재조명하는 강좌를 마련할 예정이다.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