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넘버원도 시청률 굴욕… 사전제작 또 참패

입력 2010-09-02 17:55


전문가들이 열악한 방송 환경을 개선할 대안으로 꼽는 사전제작 드라마가 연이어 참패하고 있다. 최근작 MBC ‘로드넘버원’부터 ‘공포의 외인구단’(2009·MBC), ‘비천무’(2008·SBS)까지 사전 제작한 대작 드라마들은 대부분 저조한 시청률로 막을 내렸다.

지난달 26일 종영한 ‘로드넘버원’은 100% 사전제작에 130억원을 들인 대작이었다. 게다가 출연진은 소지섭 김하늘 최민수 손창민 등 톱스타급이다. 연출은 ‘개와 늑대의 시간’의 김진만 PD와 ‘천국의 계단’의 이장수 PD가 맡았고, 대본은 ‘태극기 휘날리며’를 쓴 한지훈 작가가 집필했다. 연출, 캐스팅, 대본 등 각 분야의 최고들이 모여 만든 드라마였지만 마지막회 시청률은 5.3%(AGB닐슨 미디어리서치)에 그쳤다.

‘로드넘버원’의 참담한 실패는 사전제작 드라마가 갖는 한계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전제작 드라마는 방영 후 시청자의 의견을 반영해 이야기 전개나 구성을 수정할 수 없다. 날이 갈수록 시청자의 취향을 예측하기 어려운 터여서 이는 치명적으로 약점이 될 수 있다.

‘로드넘버원’은 초반에 블록버스터급 전쟁영화를 예상한 시청자들의 기대와 달리 신분 차이와 전쟁 때문에 헤어지는 연인의 신파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 전쟁을 묘사하는 액션신과 사랑과 질투를 그린 멜로적인 측면이 매끄럽게 연결되지 못해 시청자들은 등장인물들의 과잉된 감정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러한 점은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지적됐지만, 이미 촬영을 마친 상태여서 손을 쓸 수가 없었다.

SBS의 한 PD는 “드라마의 기획 의도나 줄거리가 대중의 취향에 맞지 않을 수 있다. 한번 길을 잘못 들면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사전제작은 위험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그래서 제작비를 절감하고, 영상미를 높일 수 있는 사전제작의 장점은 살리면서도 시청자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절충적 사전제작’이 대안으로 떠오른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 3월 종영한 KBS 2TV ‘추노’다. 시청률 35%를 기록한 ‘추노’는 40% 정도 제작된 상태에서 방영됐다. 이미 찍어 놓은 분량 덕분에 쫓기듯 촬영하는 ‘생방송 드라마’ 신세에서 벗어나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고, 시청자들의 반응도 적절히 반영할 수 있었다. 전체의 60%가량을 촬영한 후 방영에 들어갔던 ‘조선여형사 다모’(2003·MBC)도 성공적인 케이스로 꼽힌다. ‘다모폐인’을 양산시키며 화제를 부른 이 드라마는 고난도의 무술 장면 등 촬영에 공을 들여야 하는 장면들을 미리 찍어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MBC의 한 PD는 “사전제작한 드라마들이 대부분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사전제작 자체의 문제는 아니다”면서 “사전제작과 사후제작을 적절하게 배분하면서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선희 기자 su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