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인 척하는 ‘100% 오렌지 주스’… ‘오렌지 주스의 비밀’
입력 2010-09-02 17:40
오렌지 주스의 비밀/앨리사 해밀턴/거름
잠에서 깨 냉장고로 향한다. 졸린 눈을 비비며 차가운 오렌지 주스를 유리잔에 가득 채운다. 벌컥 벌컥 한 방울도 남김없이 들이킨다. 달콤함과 새콤함이 온 몸으로 퍼진다. 상쾌한 전율이 느껴진다. 건강한 하루를 시작한다는 생각에 흐뭇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생각만큼 좋은 것일까.
기분은 좋을지 모르지만 우리가 바라는 만큼 신선한 오렌지 주스를 마신 것은 아니다. 오렌지 주스 회사의 광고를 보고 있자면 방금 따온 오렌지를 즉석에서 짠 상품처럼 느껴질 법도 하지만 이는 심한 과장이다. “난 100% 오렌지가 들어있는 것만 마신다”고 자신만만해 하지 말자. 그 100%는 우리가 생각하는 순수한 오렌지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제품 라벨을 잘 살펴본다면 ‘100% 농축과즙’ 같은 문구를 보게 될 것이다. 심지어 100% 오렌지를 강조하면서 첨가물로 액상과당을 넣는 경우도 있다.
오렌지 주스의 출발은 생과일로 먹을 수 없는 ‘불량품’을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통조림처럼 캔에 담긴 주스가 있었다. 하지만 가열을 하는 제조과정 때문에 맛이 없었고 인기도 시큰둥했다.
그러다 1948년 플로리다 과학자들이 10년의 연구 결과 동결 농축과즙(FCOJ)을 만들어내면서 상황이 변하기 시작한다. FCOJ는 26.6℃에서 오렌지 주스의 수분을 증발 시킨 후 농축된 용액을 냉동시키는 과정을 거친다. 이 상태로는 맛이 고약하기 때문에 적당량의 오렌지 주스를 섞으면 진짜 오렌지 주스의 맛과 비슷하게 된다. FCOJ는 큰 반향을 불러왔고 ‘신데렐라 제품’이라고 불리기까지 했다. FCOJ 기술로 장기 저장이 가능해지면서 플로리다 오렌지 생산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오렌지 주스를 생산하는데 유리한 발렌시아, 햄린 종도 드디어 빛을 보게 됐다.
1961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오렌지 주스 정체성 표준 개발 공청회’를 개최한다. 논의의 출발은 FCOJ와 같은 오렌지 주스가 진짜 오렌지 주스인가를 가려내기 위함이었다. 3000장 이상의 필사기록이 남겨졌고 제조사와 소비자를 대표하는 양측은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하지만 FDA는 소비자보다 제조사쪽에 유리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 FDA는 주부들은 단순하므로 제품 라벨은 최대한 단순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오늘날 많은 오렌지 주스 제조사들이 오렌지 외에 다른 첨가물을 넣으면서도 ‘100% 오렌지 주스’라고 광고할 수 있는 길을 터준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오렌지 주스가 진짜로 갓 짠 것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은 ‘100퍼센트 순수하고 희석되지 않았으며 열처리를 하지 않았고 설탕을 넣지 않았으며 갓 짜낸 오렌지 주스’라고 쓴 라벨 뿐이다. 하지만 이렇게 표기하는 업체는 없다.
냉장주스 코너에서 볼 수 있는 NFC 라벨이 붙은 주스도 마찬가지다. 저온살균한 비농축 오렌지 주스를 뜻하는 NFC는 FCOJ보다 신선하고 본래 오렌지 주스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지금까지도 큰 인기를 누리는 제품이다. 하지만 NFC도 100% 오렌지만 들어있는 건 아니다. NFC는 햄린 종으로 만드는데 가을에 나오는 햄린은 색이 약해 탄제린이라는 성분을 추가한다. 탄제린은 오렌지 주스의 색을 화사하게 해 준다. 전체 양의 10%만 넘지 않으면 규정에 어긋나지도 않는다. NFC는 저온살균하고, 오렌지 기름을 제거하고, 무균 탱크에 저장한 다음 다시 꺼내서 첨가물을 넣고 용기에 담는 과정을 거친다. 수개월에서 1년 이상을 보관하는 경우도 있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맛과 향을 온전히 보존할 수는 없는 일이다. 요즘 대부분의 오렌지 주스는 향과 맛을 올려주는 향미 팩에 의지하고 있다. 저자는 “소비자들은 진짜 생과일 오렌지 주스보다 공장에서 가공된 미리 짜 낸 오렌지 주스에서 더 오렌지의 풍미를 느낀다”고 꼬집는다.
FCOJ가 등장한 1940년대 이후 미국의 생과일 오렌지 소비량은 급격히 떨어졌다. 대신 오렌지 주스의 소비량은 꾸준히 늘었다. 진짜 오렌지에 대한 수요를 ‘100% 오렌지 인 척’하는 주스에게 빼앗긴 것이다.
저자는 “미리 짜 있는 오렌지 주스를 다른 시각으로 보기 바라며, 현대 식품 환경에 감춰진 기이한 방식에 눈뜨기를 권한다”고 말했다. 그가 바라보는 21세기 오렌지 주스의 미래는 소비자가 직접 갓 짠 오렌지 주스를 마시는 것이다. 재배자의 입장에서는 중간 유통단계 없이 직접 소비자에게 다가가는 것이 더 큰 이윤을 남길 수 있고, 소비자도 진짜 100% 오렌지 주스를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짜 오렌지 주스를 마시게 되면 그동안 ‘100%, 신선한, 퓨어’ 등 현란한 광고 문구에 얼마나 속아왔는지 소비자 스스로 깨닫게 될 것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