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의 시선] 금융위기 2년 되돌아 보니

입력 2010-09-02 18:13


2008년 9월 15일 미국 5대 투자은행 중 하나인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을 계기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된 지 2년이 돼간다. 2007년 초 처음으로 미국의 서브프라임 주택담보대출 문제가 불거졌을 때, 미국 정부 관계자들은 부실 규모가 500억 달러에서 1000억 달러 사이라며 작은 액수는 아니지만 경제 전체에 큰 충격을 주지 않고 해결될 수 있는 정도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부실 규모가 점점 늘어나면서 2008년 여름이 돼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같은 해 9월 15일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해 금융시장이 공황상태에 빠져들었고, 9월 19일에는 급기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부실 금융사와 제조업체에 7000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Troubled Asset Relief Program)’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2008년 여름부터 가을에 걸쳐 미국 영국 아일랜드 아이슬란드 등 세계 각국에서 공적자금 투입을 통해 은행 보험회사 등 주요 금융사가 국유화됐다. 국영기업이라면 손사래 치는 미국에서조차 GM 크라이슬러 등 제조업체마저 국유화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급격한 신용경색이 오면서 주요 선진국 중앙은행들은 전례 없는 저이자율 정책을 펴서 미국 일본 등은 기준 이자율을 사실상 0%로 내렸다. 영·미계 중앙은행보다 보수적인 것으로 유명한 유럽 중앙은행도 이자율을 0.5∼1%로 유지했다. 당시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ank of England)은 설립 이후 최저 이자율을 기록했다. 영란은행이 설립된 게 1694년임을 생각하면 최근의 저이자율 정책이 얼마나 유례없는 것인가를 알 수 있다.

민간경제가 급격히 얼어붙어 경기가 하락하자 주요국 정부들은 세수 급감에도 불구하고 정부지출을 유지하거나 증가시켜 총수요를 유지하려 했다. 그로 인해 금융위기 진원지였던 미국 영국 등에서는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13∼14%에 이르게 됐다. 전쟁 기간을 제외하고는 사상 최대의 재정적자 규모였다. 이런 전례 없는 조치들에 힘입어 2009년 중반부터 세계경제는 조금씩 살아나는 기미를 보였고, 2010년 상반기에는 이제 회복된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난 늦봄과 초여름 사이에 그리스를 필두로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등의 재정적자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금융시장이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난 몇 주 동안은 미국의 경기회복 추세가 점점 약화되면서 세계경제 회복세도 약화되는 것 아닌가, 심지어는 경기가 회복되는 듯하다가 다시 악화되는 더블딥(double-dip) 침체가 오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일고 있다.

미국 경제는 한동안 주춤하던 실업자 수가 다시 늘고 있다.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금융위기 초기에 실업자가 된 많은 사람이 아직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고, 이들은 곧 실업수당의 최대 한계치인 99주가 다가오면서 길거리에 나앉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실업수당이 끊기는 데 따른 소비수요 감소도 문제지만, 이들이 오갈 데 없는 부랑인으로 전락해 거리에서 떠돌기 시작하면 다른 사람에게 ‘우리도 실직하면 저렇게 된다’는 공포감을 심어줘 전반적인 소비심리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

게다가 조금 풀리는가 싶던 미국 주택시장도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 미국 정부가 주택경기 부양을 위해 첫 주택 구입자에게 한시적으로 주던 보조금이 지난 봄에 끝나면서 주택 수요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실업이 줄지 않으니 주택담보대출을 갚지 못하고, 그래서 차압된 주택이 시장에 쏟아져 나와 집값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주택 수요가 없다 보니 주택 건설이 줄어들고, 그에 따라 건설업에서 실업자가 속출하고 있다.

미국과 함께 이번 금융위기 진원지였던 영국도 사정이 크게 낫지 않다. 실업률은 미국보다 낮고, 미국보다는 복지제도가 잘돼 있어 ‘실업자가 되면 죽는다’는 공포감이 훨씬 덜하고, 따라서 높은 실업률에도 소비심리는 미국만큼 위축돼 있지 않다. 주택시장도 몇 달째 가격과 물량이 떨어지고 있지만 미국처럼 큰 폭은 아니다.

그러나 영국의 경우 큰 변수는 지난 5월 선거에서 집권한 보수당-자유민주당 연립정권이 내년부터 급격하게 정부지출을 삭감해 재정적자를 줄일 계획이라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지나친 재정적자가 좋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하지만, 현재 영국 정부가 내놓은 삭감 계획은 지나치게 대규모이고 고속이라는 게 중론이다.

미국 영국을 필두로 한 세계경제의 최근 동향은 ‘이제 위기는 끝났다’는 일부 주장이 얼마나 성급한 것이었나를 보여준다. 설사 앞으로 몇 달 사이에 실업률, 주택가격 등의 지표들이 다시 일시적으로 호전된다 해도, 미국 영국 등 이번 경제위기 핵심에 있는 나라들이 향후 1∼2년 안에 근본적인 회복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금융사들이 갖고 있는 과잉부채 및 독성 자산, 부동산 과잉 공급, 지나친 가계부채 등 금융위기를 가져 온 근본 문제들은 하나도 해결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상업용 부동산 같은 경우는 아직 문제가 본격화되지도 않은 상황이다. 세계경제의 앞길이 험난하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