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수민 (3) “너를 굳세게 하리라” 음성 듣고 새 삶
입력 2010-09-02 17:41
실명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끊으려던 내게 주님은 소리와 빛으로 찾아오셨다. 그리고 직접 말씀을 들려주셨다. 그것은 마치 이어폰을 귀에 꽂고 큰 소리로 듣는 것 같은 긴 울림의 음성이었다. 내가 자주 읽던, 친숙한 이사야 41장10절의 말씀이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 음성은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던 나의 정신이 번쩍 들게 했다. 고요하고 나직한 음성은 절망의 나락을 헤매던 내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너무나 선명하게 각인시켰다. 잠시나마 주님을 원망하고 존재를 부인하려 했던 것을 회개했다.
“내가 너를 도와준다고 하지 않느냐. 수민아, 여기서 넘어져선 안 된다. 나를 의지하고 힘차게 일어나 보려무나.”
날개가 부러진 새처럼 널브러져 있던 내게 주님은 손을 내밀어 주셨다. 내가 그 손을 잡자 희망과 소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새로운 삶을 개척해야 한다는 의지가 비누거품처럼 피어올랐다. 그러자 갑자기 배가 고파져 아내를 불렀다.
“여보, 나 먹을 것을 좀 줘요.”
며칠간 식음을 전폐한 나를 보며 고통스러워하던 아내가 달라진 내 모습을 보고 의아해했다. 나는 음성으로 찾아오신 예수님을 간증하며 감격스러워 했지만 아내는 어안이 벙벙한 모양이었다. 아내가 차려 온 죽을 먹고 긴 잠에 빠진 나는 다음날 예정대로 나이아가라 폭포 관광을 떠났다. 사실 자살을 하기 위해 승낙한 여행이었기에 이젠 갈 필요가 없었지만 또 번복하기 힘들어 아내를 따라 나선 것이다.
나이아가라 폭포 앞에 서게 되었다. 멋진 물줄기의 장관은 안 보여도 물 떨어지는 웅장한 소리와 물 파편, 자연의 상큼한 냄새를 통해 분위기를 모두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놀라운 세계를 눈을 잃고서야 더 확실히 느낍니다. 주님과 더 가까이 하며,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보스턴에 자리 잡은 우리 가정은 내가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려 했지만 아이들과 아내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뭐든지 혼자 해보려고 애를 썼지만 온통 넘어지고 깨뜨리고 부딪히기 일쑤였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맥이 빠졌다.
얼마 후 우리 집 초인종이 울렸다. 아무도 우리를 찾아 올 사람이 없는데 이상히 여기며 문을 열었더니 낯선 미국인 2명이 서 있었다.
“닥터 리. 저희는 미국장애인후원협회 보스턴지부 직원입니다. 허친슨 박사로부터 연락을 받고 도움을 드리러 왔습니다.”
그들은 내 안부와 건강을 물으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아내가 커피를 준비하느라 주방으로 가자 내 곁에 와서 조용히 말을 건넸다.
“중도실명자의 충격은 아주 큽니다. 그런데 미국은 아내가 이혼요구를 하는 사례가 많아 더 충격을 받습니다. 미국의 경우 아내가 이혼소송을 제기하면 법원이 쉽게 승낙하기에 닥터 리는 이 부분도 각오를 해야 할 것입니다.”
“아내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시간이 지나면 장담할 수 없으니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겠노라며 먼저 가스레인지를 켜고 끄는 법부터 친절하게 교육했다. 아내가 이 모습을 보고 남편은 자신이 돌볼 것이니 이런 교육을 받지 않아도 된다고 만류했다.
“저는 이 박사와 결혼할 때 약속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함께하겠다고 한 것을 분명히 지킬 것입니다. 저는 남편을 하나님 다음으로 믿고 존경하기에 제가 남편을 떠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직원들은 아내의 말에 무척 감동하는 눈치였다. 그러더니 교육을 중단하고 조용히 문을 열고 사라졌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