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아침] 조부모의 역할

입력 2010-09-02 17:46


지난주 이 지면에서 맞벌이 가정의 아이들 이야기를 했다. 할머니를 만날 때마다 함께 더 놀아 달라고 사정한다는 이야기였는데, 이 칼럼을 읽고 많은 분이 “그런 상황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알려 달라”고 부탁해 왔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할머니들은 손주들의 이런 태도에 지나치게 마음 쓰고, 아이들에게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고 충고하겠다. 지난주 칼럼은 엄마 아빠가 출근하고 없는 집에서 지내야 하는 아이들을 위해 할머니 할아버지가 자주 놀아주면 좋다는 뜻이지, 엄마를 제쳐두고 할머니가 더 큰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엄마의 양육 태도가 적절치 않을 경우 아이들은 애정과 관심, 배려를 할머니에게서 더 발견하고 할머니를 엄마보다 더 좋아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상태는 정상이라고 할 수 없다. 아무리 다른 사람에게서 사랑을 받더라도 부모의 정이 모자라면 아이들의 가슴에는 구멍이 뻥 뚫린다. 그리고 부모의 사랑을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 별 짓을 다 하게 된다.

딸 둘에 아들 하나를 둔 친구가 있다. 의과대학에 다니는 아들과 며느리를 위해 그 쌍둥이를 봐 주던 때가 있었다. 가끔 집을 방문하면 친구가 “남자 쌍둥이는 움직이는 양이 두 배가 아니라 네 배야, 네 배”하면서 웃곤 했다.

그러다 아들네가 제주도로 여행을 가겠다고 했다. 이 기회에 쉬고 싶어 따라가지 않겠다고 했지만 아이들의 마음을 떠 보려고 “할머니 비행기 표는 어디 있어”라고 물었단다. 그랬더니 단호한 어조의 “없어”라는 답이 돌아왔다. “없으면 어떻게 해? 나도 가고 싶은데”라고 했더니 쌍둥이 형제는 “할머니 표 없어!”라고 합창을 했다. 친구는 그제야 아이들이 부모와의 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를 알 수 있었다고 했다.

어떤 할머니들은 손주들의 이런 태도에 섭섭해하곤 한다. 부모가 집에 오면 아이들은 그 때까지 매달리던 할머니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쏜살같이 달려간다. 이런 꼴 당하기 싫어 아예 아이들을 봐 주지 않겠다고 작정하는 할머니들도 적지 않게 봤다. 그러나 아이들의 마음을 알아 주어야 한다. 그리고 보듬어 주어야 한다.

나는 주변에 맞벌이 자녀를 둔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가능하면 손주들을 돌봐 주자”고 권한다. 비록 가사일은 남의 도움을 받더라도 아이 돌보는 일은 우선순위 1위에 두어야 한다.

하나님은 왜 아기를 무기력한 상태로 태어나게 하셨을까. 혼자 먹지도 입지도 못하고 세상 이치도 모르는 순진한 아이들을 키우려면 어른들이 가진 사랑과 지혜와 지식을 다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가진 것을 후세에 넘겨줄 기회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이다. 어른들은 그 축복과 소명을 감사함으로 받아야 한다.

손주들과 마음껏 사랑을 나누다 엄마 아빠가 돌아오면 슬며시 일어나 그들만의 시간을 주는 지혜로운 할머니 할아버지, ‘멋있는 어른’이 많아지길 바란다.

이원영<중앙대 유아교육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