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바이 훔친 10代 성실히 과제 이행… ‘청소년 참여법정’ 첫 결실

입력 2010-09-01 21:07


지난 6월 같은 또래 청소년들이 일종의 배심원으로 참여한 청소년 참여법정에서 일기쓰기 등 과제를 부여받은 보호소년이 과제를 잘 이행해 처벌을 면했다.

서울가정법원 소년3단독 신한미 판사는 1일 과제를 성실히 이행한 A군(15·중3)에게 심리를 개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청소년 참여법정 제도가 도입된 이후 첫 결정이다.

신 판사는 “일기도 잘 썼고 혈중 일산화탄소 농도도 정상범위보다 낮은 5ppm까지 내려가 심리를 열지 않아도 될 것 같다”면서 “앞으로 법원에 오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석 달 전 열린 청소년 참여법정에서 당시 중학생 5명과 고등학생 1명으로 구성된 참여인단은 오토바이를 훔쳐 몰다 붙잡힌 A군에게 안전운전 교육을 받고 금연 클리닉에 참가하라는 과제를 제시했고, 그는 이를 모두 수행했다.

A군은 청소년 참여법정에 회부된 보호소년의 필수 과제인 일기쓰기도 약간 몰아쓰기는 했지만 40가지의 주제와 독후감, 교육별 소감문까지 성실하게 작성했다. 지난 7월에는 청소년 참여법정의 참여인단에 들어가 자신처럼 오토바이 절도 혐의로 회부된 비행 청소년에게 안전운전 교육 과제도 제시했다.

A군은 “부모님이 내 앞에서 울었을 때 가장 속상하고 참담했다. 이제는 부모님이 웃을 수 있도록 하고 싶다”며 자신이 쓴 일기 중 한 대목을 낭독했다.

신 판사와 실무관, 법정경위 등은 심리불개시 결정 직후 A군에게 케이크와 책도 선물했다. A군에게 준법정신을 가지라는 취지에서 법복을 입고 사진을 찍을 기회도 제공했다.

이번 사건은 보호소년이 성공적으로 과제를 이행했다는 점에서 청소년 비행사건을 처리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현재 A군처럼 청소년 참여법정에서 과제를 받아 이행 중인 청소년은 모두 24명이다.

신 판사는 “보호소년들에게 왜 여기에 왔는지를 깨닫게 해야 하는데 재판은 시간이 너무 짧다”면서 “이 제도는 반성할 기회가 많아 아이들에게 교육적이고 장기적으로 재범률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청소년 참여법정은 19세 미만의 소년이 가벼운 비행을 처음 저질렀을 때 청소년으로 구성된 참여인단이 사건 내용을 살핀 뒤 과제를 선정해 판사에게 건의하고 보호소년이 이를 잘 이행하면 심리불개시 결정을 내려 처벌을 면하게 해주는 제도다.

미국에서는 여러 주의 청소년법정에서 이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올해 서울가정법원에 처음 도입됐다.

안의근 기자 pr4p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