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두언 “靑에 차지철이 다시 살아왔나”… 이상득 “싸우기 싫다 고발하려면 해라”

입력 2010-09-01 21:04


한나라당에 다시 전운이 감돌고 있다. 청와대의 인사 검증라인 문책을 요구했던 정두언 최고위원과 정태근 남경필 의원 등 친이계 소장파 의원들이 불법 사찰의 배후로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의원을 직접적으로 거명하며 책임자 문책을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전날 한나라당 의원 연찬회에서 정 의원과 함께 이 의원의 책임 문제를 제기했던 정 최고위원은 1일 당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일부 언론에 ‘소장파가 8·8 개각에 개입했고, 정치인 사찰은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라는 요지의 청와대 인사 발언이 보도된 데 따른 것이다.

정 최고위원은 “보도를 보고 경악했고, 과거 청와대의 차지철이 다시 살아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비난했다. 그는 “부실 검증 책임을 의원에게 떠넘기고 사찰을 정당화하겠다는 의도”라며 “대통령실장이 분명히 해명하고 발언자를 엄중 문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응하는 조치가 없으면 임태희 대통령실장도 같은 입장이라고 생각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남 의원도 “불법사찰은 국민 모두의 문제이며 한나라당이 지켜야 할 자유와 인권에 관한 막중한 문제”라고 거들었다. 그는 “주류 내부의 권력다툼으로가 아니라 국민의 시각에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다음 총선, 대선도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배후 당사자로 거명된 이상득 의원 측은 대응을 자제하며 일단 지켜보자는 분위기다. 이 의원은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나는 싸우기 싫다. 고발하려면 고발하라고 해라”고 했다. 그는 “정치인들은 하고 싶은 말은 다 하는 것 아니냐. 정치인의 말은 그냥 듣고 있으면 되는 것”이라며 “대응 안 하기로 했다”고 입을 다물었다.

친이상득계 장제원 의원은 “정확한 근거와 증거도 없이 원로 선배에게 정말 패륜적인 방식으로 얘기했다”고 언성을 높이면서도 “일단 오늘은 두고 보겠다”고 했다.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아도 맞대응을 애써 참고 있지만 공격이 계속된다면 결코 가만있지 않겠다는 뜻이다.

다툼을 바라보는 여권 내부는 걱정스런 표정이다. 전당대회 이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친이계 내부의 갈등 양상이 다시 본격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김무성 원내대표는 “안상수 대표와 제가 중재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친박계 중진 홍사덕 의원은 정 최고위원을 향해 “6·2 지방선거 때 분열과 갈등으로 권력의 절반을 잃어버렸다”면서 “좀 자제해야 된다. 언론에 얘기하지 말고 당사자끼리 만나 해결하라”고 충고했다. 정의화 국회부의장도 “홍 의원 말에 동감한다”고 거들었다.

친이계 좌장격인 이재오 특임장관은 기자들이 ‘정두언 위원 등과 이상득 의원 간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고 묻자 “특임(장관) 소관이 아니다”라고 피해갔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우리의 입장은 부답(不答)이다”라면서도 “발언이 좀 심하다는 지적들이 많았다”고 했다. 청와대 내에선 공개적인 언급을 꺼리면서도 정 최고위원과 정 의원의 발언에 대해서는 “저렇게 말하는 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니지 않느냐. 더 이상 뭘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비판적인 목소리들이 나오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로선 정 최고위원과 정 의원이 문제 제기를 계속 이어가느냐 여부가 확전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양측이 전면전 양상으로 격돌한다면 여권에 또 한 차례 태풍이 몰아칠 수도 있다.

정승훈 기자 s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