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 재앙… 약도 못먹고 굶주린 아이들 신음

입력 2010-09-01 18:04


지난 26일 정오쯤 우간다 수도 캄팔라에서 차로 4시간을 달려 도착한 키리안동고시(市) 나카도트 마을. 동아프리카 내륙에 위치한 이곳은 적도에서 불과 220㎞ 떨어져 있다.

햇빛은 매섭고 땅은 붉었다. 직경 1m가 넘는 나무들은 영양분이 풍부한 적토(赤土)에 뿌리를 박고 푸른 잎을 무성하게 피웠다. 그러나 거리는 황량했다. 20년간 지루하게 이어진 내전의 상처다. 짓다 만 건물은 잡초가 차지했다. 해진 옷을 입고 그늘에 앉아 있는 젊은이들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일거리를 구하러 나왔지만 허탕 친 사람들이다. 우간다는 인구의 35%가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산다. 실업률은 집계조차 안 된다.

마을 입구에서 다시 10여분을 들어갔다. 다섯 살쯤 된 남자 아이가 제 몸통만한 물통을 끌어안고 흙먼지 날리는 비포장 길을 걸어갔다. 풀과 나무가 우거진 좁은 길을 헤쳐 나가자 건초를 올려 지붕을 만든 허름한 집이 나왔다. 마당에서 온 몸에 흙먼지를 뒤집어쓴 아이를 만났다.

네 살 여자 아이 아비요 마시다. 아이는 속옷도 없이 누더기 같은 윗옷 하나만 걸친 채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박박 밀어 올린 머리에는 흰 고름이 가득했다. 영양실조로 온몸에 기력이 빠진 듯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아이는 간간이 주변에 돌아다니는 개미를 주워먹었다. 심부전증으로 양쪽 종아리에 피가 통하지 않아 걷지도 서지도 못한다. 무릎은 땅을 기어 다니느라 굳은살이 단단히 박였다.

이름을 부르며 다가갔지만 대답이 없다. 삼촌 아뇨아 데니스(33)는 “병에 걸려 거의 듣지 못하고 말도 못한다”고 말했다.

아비요는 날 때부터 허약했다. 엄마 라보 릴리야(30)는 에이즈에 감염됐지만 마을 전통에 따라 집에서 아이를 낳았다. 라보는 분유 살 돈이 없어 아비요에게 모유를 먹였다. 모유를 먹은 아비요는 한달에 한 번꼴로 말라리아를 앓았다. 엄마의 에이즈가 아이에게 전염된 탓이다. 아비요처럼 엄마에게서 감염된 아동은 우간다 지역 에이즈 감염자의 22%에 달한다.

아비요의 아빠는 부인이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쫓아냈다. 우간다는 ‘에이즈에 감염된 사람은 문란하다’는 편견이 강하다. 엄마는 아비요와 남매 3명을 오빠에게 맡기고 마을을 떠났다. 삼촌 아뇨아는 첫째 여동생 라보의 자녀 외에 둘째 여동생 아누마(23)의 자녀 3명도 데리고 산다. 아누마도 마을을 떠났다. 아누마의 남편은 라보가 에이즈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이혼을 요구했다. 아누마도 감염됐을 수 있다고 오해해서다.

이렇게 에이즈 때문에 모인 아비요의 열 식구는 집 주변에서 기르는 감자를 으깨 하루 한 끼를 먹으며 지낸다. 가끔 삼촌이 일당 대신 얻어 온 옥수수를 먹는다. 밭이 작고 일할 사람도 없어 식량은 항상 부족하다. 아이들 모두 영양실조와 피부병을 앓고 있다.

약은 먹는지 물었다. 에이즈는 완치가 불가능하지만 약을 먹으면 바이러스의 활동을 줄일 수 있다. 삼촌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불가능하고 소용없는 짓”이라고 말했다. 가난 때문이다.

직업이 없는 삼촌은 매일 마을을 돌아다니며 일거리를 찾지만 빈손으로 돌아올 때가 더 많다. 운 좋게 일거리를 찾아도 하루 벌이는 1000∼2000실링(500∼1000원)이다. 삼촌은 이 돈을 아껴 먹을 것을 사고 간염에 걸린 아버지의 치료비도 댄다. 아직 수술할 돈은 마련하지 못했다.

아비요가 사는 나카도트 마을은 주민 2000여명 중 67명이 공식적인 에이즈 감염자로 집계돼 치료를 받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의 눈을 의식해 NGO 등에서 받은 에이즈 약을 몰래 복용하는 사람이 35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나카도트 마을 주민 5명 중 1명이 에이즈에 감염됐다는 뜻이다. 우간다 전체 감염자 평균(6.4%)을 훨씬 웃돈다.

내전과 가난이 만든 생채기다. 나카도트 마을은 우간다 중부 고속도로 주변에 있다. 내전으로 북부에서 수많은 난민이 길을 따라 내려와 이곳에 자리 잡았다. 돈 없이 맨몸으로 마을을 찾은 여성들은 몸을 팔았고 에이즈 감염자도 급속히 늘었다.

우간다 정부는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 우간다 전체 병원에서 에이즈 감염 여부를 테스트할 수 있는 기계는 8대에 불과하다. 나카도트 마을이 있는 키리안동고시에는 병원이 한 곳밖에 없고 에이즈 테스트 기계도 없다. 국립병원은 약을 무료로 제공하지만 양은 턱없이 부족하다. 가난한 주민들은 매일 일을 해야 하고 병원까지 갈 이동수단도 없다. 사설 병원은 치료비가 비싸다. 더구나 우간다 정부는 에이즈 정책 예산의 100%를 해외 원조에 의지한다. 미국 정부와 NGO의 원조가 85%를 차지한다. 최근 미국과 유럽의 금융위기로 원조가 줄어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어린이재단 우간다 본부 에이즈 전문가 페니야 초야갈라는 “빈곤이 지속되면서 에이즈 감염자가 줄지 않는다”며 “아무 죄 없는 어린 아이들이 에이즈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키리안동고(우간다)=글·사진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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