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술 예술혼, 현대회화 속에 숨 쉬더라… 학고재 갤러리 ‘춘추’展
입력 2010-09-01 21:25
한국 현대미술은 어디서 왔는가. 서울 소격동 학고재 갤러리에서 10월 말까지 열리는 ‘춘추(春秋)’ 전은 이 같은 물음에 답을 찾아나서는 기획전이다. 전시 제목은 공자가 지은 노나라의 역사서 ‘춘추’에서 빌려온 것으로 춘(동시대의 현대작가들)과 추(역사 속의 선배작가들)의 교감을 통해 한국미술의 배경과 특징을 살펴보자는 의미를 담았다.
전시는 현대작가 11명과 고미술 12점의 짝짓기로 구성됐다. 조각가 정현의 작품은 조선시대 서화가이자 문인인 정학교의 ‘죽석도’와 닮았다. 두 작품은 단순하지만 묵직하고 강한 에너지가 느껴진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경계초소와 군함, 초가와 기와집 등 이미지를 그리는 이세현의 작품은 실경의 느낌을 중시했던 겸재 정선의 ‘박연폭포’와 일맥상통한다.
차고 이지러지는 달빛을 받으며 미끄러지듯이 흘러가는 배 모습을 담은 한계륜의 영상 작업에서는 조선후기 관료 김유근이 먼 산을 바라보며 배를 타는 강태공의 모습을 그린 ‘소림단학도’의 정서가 느껴진다. 한 획 한 획을 단숨에 그려나가는 송현숙의 그림에서는 조선후기 문신이자 서화가였던 윤순의 초서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필(筆)의 기운이 담겨 있다.
목욕탕 풍경을 즐겨 그리는 이영빈은 작가 서명을 하지 않는다. 작품 속 선(線)이나 구성, 색감이 바로 작가 자신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런 태도는 초상화에는 그 인물의 성품까지 드러나야 한다는 조선시대 ‘전신사조(傳神寫照)’의 전통을 계승한 것이다. 이번에 처음 공개되는 고려 불화 ‘암굴수월관음보살도’는 가짜 물고기를 낚는 이용백의 작품과 쌍을 이뤘다.
이밖에 식물을 그린 김홍주와 석파 이하응의 ‘묵란도’, 추상 산수화를 그린 정주영과 겸재의 ‘인왕산도’, 윤석남의 ‘견공지몽’과 15∼16세기 작품으로 추정되는 작자미상의 ‘방목도’, 리경의 조각과 추사 김정희의 글씨, 신학철의 ‘유월항쟁과 7, 8월 노동자 대투쟁도’와 18세기 작자미상의 ‘명부시왕오도전륜대왕도’가 나란히 걸려 고전과 현대의 조화를 엿보게 한다(02-720-1524).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