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의 탄식… 50만t 추가 매입으로 멈추나.정부 햅쌀 수요초과분 전량 매입 대책
입력 2010-09-01 00:15
정부가 올해 수확되는 쌀 가운데 시장의 수요를 넘어선 물량을 모두 사들이기로 했다. 올해 햅쌀 공급량이 473만t인데 비해 공공비축 매입분을 포함한 쌀 수요 전망치는 426만t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정부가 사들일 물량은 40만∼50만t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재고 처리를 위해 추수한 지 2년 이상 된 묵은 벼 가운데 밥쌀로 쓸 수 없는 2005년산 11만t은 소주 원료인 주정용 등으로 공급하고, 나머지는 면이나 과자 등 가공용으로 공급할 계획이다. 미곡종합처리장(RPC) 등이 보유한 벼 매입자금 규모도 기존 1조원에서 1조2000억원으로 늘리기로 했다.
유정복 신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31일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갖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쌀값 안정 및 수급균형 대책’을 발표했다.
유 장관은 “기존 대책과는 차이가 있다”며 “지난해엔 평년작 이상의 쌀에 대해 시장격리 조치를 했다면 이번엔 연간 실질소비량 이상을 격리하는 것으로 실질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고 쌀을 식품과 친환경 신소재, 수출원료 등 밥이 아닌 가공용으로 싸게 공급하면 수요도 커질 것이라는 게 정부 전망이다. 농식품부는 그동안 재고 쌀 처리 방안으로 고려했던 사료용 전환은 농민들의 반발을 고려해 철회했다. 시민단체 등에서 제기되는 쌀 대북 지원과 관련해서도 유 장관은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검토할 가치가 있지만 남북 간 정치적 상황을 감안해 검토해야 한다”고 발을 뺐다.
정부는 넘치는 쌀 재고를 해결하기 위한 장기적 처방도 내놨다. 내년부터 3년간 한시적으로 매년 4만㏊의 논에 다른 작물을 재배하도록 하기 위해 전환농지 ㏊당 300만원씩을 농가에 지원키로 한 것이다. 또 2015년까지 논 3만㏊를 농지은행을 통해 사들여 다른 용도의 땅으로 바꾸기로 했다.
그러나 농식품부가 꺼내든 이번 쌀 수급안정 대책은 물량 조절을 위한 정부 재정 지출만 더 늘릴 뿐 과거 대책과의 차별성이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수요를 뛰어넘는 쌀 공급 속도다. 풍년이 두려울 정도로 쌀 재고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까지 생산된 쌀 재고가 149만t에 달한 상황에서 올해 햅쌀 수요를 넘어서는 규모의 쌀이 시장에 쏟아질 경우 쌀값 불안은 물론 재고처리 계획에도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올해 쌀 생산량은 470만t 수준으로 최대 482만t까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며 “그러나 실제 생산량이 전망치를 웃돌 경우 추가 매입비용 부담을 고려해 재고처분 물량을 더 늘려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쌀 관세화 유예를 조건으로 해마다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수입 물량도 빠르게 늘고 있어 쌀 재고 관련 비용은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1995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당시 쌀 관세화를 한 차례 유예한 뒤 2004년 쌀 협상에서 다시 10년간 연장하는 조건으로 2014년까지 5%의 낮은 관세로 최소시장접근(MMA) 물량을 의무적으로 수입키로 했기 때문이다. 2005년 22만5575t이던 MMA 물량은 해마다 2만여t씩 늘어 올해는 32만7311t에 달했다.
전남의 한 미곡처리장 관계자는 “전국에서 연간 40만∼50만t씩 도정해 북한으로 보내던 쌀 수요처를 대체할 만한 데가 없다”며 “사료용으로라도 쓰고 싶지만 나라에선 절대 안 된다고 하니 쌓여가는 것만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정동권 기자 danch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