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염성덕] 스콜과 소나기
입력 2010-08-31 17:48
큰맘 먹고 가족 여행을 간 서태평양의 괌에서 난생 처음 스콜을 보았다. 가이드가 몰고 온 승용차를 타고 괌 둘레길을 돌며 열대지방의 풍광을 배경으로 정신없이 기념사진을 찍을 때였다.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이 피어오르다가 회색 구름으로 변하더니 폭우가 쏟아졌다. 양동이로 물을 들이붓듯 퍼부었다.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쏟아지는 호우를 국내에서는 본 적이 없었다.
둘레길의 오르막과 내리막이 만나는 도로에는 금방 물이 넘쳐흘러 마치 차를 타고 파도타기를 하는 것처럼 드라이브를 했다. 둘레길을 일주하는 동안 여러 차례 스콜을 만났다. 억수같이 퍼붓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치곤 했다. 가이드는 “적도를 중심으로 남북 회귀선 사이에 있는 열대지방에서 나타나는 기상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교회에 갔던 아내가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야외 베란다의 빨래를 걷고, 간장독과 된장독의 뚜껑을 닫아 달라는 것이었다. “무슨 소리야. 여기는 비가 한 방울도 안 와요.” 교회와 우리 집은 지하철역을 기준으로 한 정거장 반 정도의 거리에 불과했다. 교회 근처에는 10분 동안 굵은 빗방울이 쏟아졌는데도 우리 집 부근에는 이슬비는 고사하고 는개조차 내리지 않았다. 서울 은평구에는 작달비가 내렸는데, 마포구나 서대문구에는 가랑비도 오지 않았다면 거리가 떨어져 있어서 그렇겠거니 이해를 하겠다. 하지만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한 동네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다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기상청 김승배 대변인과 점심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까닭을 물었더니 그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서울시내 10차로쯤 되는 교차로에서 신호대기로 정차하고 있었어요. 10차로 맞은편에서는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데, 제가 정차하고 있는 곳에는 비가 안 오는 거예요.” “에이, 그럴 리가 없다”며 믿지 않았더니 김 대변인은 “곧 비슷한 경험을 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며칠 후에 운전을 하고 가다가 김 대변인이 겪은 것과 유사한 경험을 했다. 직접 목격했지만 지금도 반신반의하고 있다.
7, 8월 국내에 쏟아진 국지성 폭우가 혹시 스콜이 아닐까 궁금해서 김 대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스콜을 닮아가고 있지만 에너지가 약하고 빗방울 크기가 작아 스콜은 아니고 소나기”라고 했다. 그는 “국내 언론이 표현하는 게릴라성 호우는 1960년대 일본 언론이 처음 사용한 것으로 기상용어는 아니다”고 말했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