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파만파 국새 논란… 민홍규 ‘5대 미스터리’ 진실은?
입력 2010-08-31 21:22
대한민국의 국권과 정통성을 상징하는 국새(國璽)를 둘러싼 각종 의혹이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옥새전각장 민홍규씨가 2007년 4대 국새를 만드는 과정에서 800∼900g의 금을 빼돌렸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불거진 파문은 민씨가 유력 인사들에게 금도장을 만들어 선물했다는 폭로로 이어졌다. 이후 국새가 전통방식이 아닌 현대식 가마에서 만들어졌다는 진위 논란으로 확대되다 급기야 경찰 수사에까지 올랐다. 갈수록 의문을 낳고 있는 국새에 얽힌 5가지 미스터리를 살펴본다.
①정말 금을 빼돌렸나
국새 제작에 함께 참여한 이창수씨는 민씨가 국새용 금 800∼900g을 빼돌려 금도장을 만들고 이를 전직 대통령, 참여정부 장차관과 공무원, 정치인 등에게 선물했다고 폭로했다. 이에 민씨는 “오히려 금이 모자라 개인적으로 2㎏을 더 썼다. 금도장도 개인적으로 만든 것”이라고 해명했다. 왕실 의궤(儀軌)에는 국새나 어보의 경우 금과 은 등 재료의 함유량이 푼 단위로 세밀하게 적혀있다.
그러나 민씨는 재료 사용량을 정확히 밝히지 않았다. 또 주석을 포함한 5합금으로 국새를 만들기로 해놓고 주석을 뺐다는 행정안전부의 발표에 민씨는 처음엔 “주석은 합금하면 날아가버리는 성분”이라고 했다가 “당초 사용 재료에 금·은·구리·아연만 있지 주석 얘긴 없었다”고 말을 바꾸었다. 금과 주석 등 함유량은 재료 성분 검사로 규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②국새장 자격이 있는가
민씨는 2007년 국새 제작 때 문화재청에 수 차례 무형문화재 국새장 지정을 신청했다. 1대 국새를 만든 것으로 알려진 고 정기호씨의 제자로 국새 제작 비법을 전수받은 국내 유일한 옥새전각장이라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민씨뿐 아니라 스승 정씨가 국새 제작 기법을 전수받았다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신청서를 반려했다.
정씨의 아들 민조씨는 “민씨가 아버지 작업장에 몇 번 들르지도 않았기 때문에 제자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선친 말년에 민씨가 몰래 도장을 찍어 후계자인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정씨의 제자 여부를 떠나 문화재청이 인가한 인간문화재도 아닌 민씨에게 검증도 없이 국새를 맡기게 된 경위와 당시 심의위원들의 역할 등은 수사과정에서 풀어야 할 과제다.
③전통방식으로 만들었나
민씨는 “국새와 같은 전통방식으로 제작한 옥새 10점 가량의 도록을 참고했다”고 밝혔다. 금 사용도 최첨단 현대식 기법으로 제작한 3대 국새의 시방서(示方書)를 그대로 따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전통방식의 핵심이 다섯 가지 흙을 섞어 만든 거푸집인데, 민씨 작업실 압수수색 결과 석고 등 현대식 거푸집의 재료만 나와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다.
전문가들은 전통방식이란 재료의 함유량이나 문양 또는 형태를 똑같이 만드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각 분야 장인들의 공동작업으로 국새가 만들어지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총지휘자인 보장(寶匠), 금을 다루는 금장(金匠), 도장을 새기는 전각장(篆刻匠), 함을 만드는 두석장(豆錫匠) 등 작업을 민씨 혼자 맡아 제작한 국새는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④훈민정음체를 사용했는가
민씨는 국새 ‘대한민국’의 ‘국’자 받침 ‘ㄱ’을 한 획으로 쓰지 않고 두 획으로 썼으며 ‘대’자에서 ‘ㅐ’의 ‘ㅏ’와 ‘ㅣ’가 약간 떨어지도록 해야 하지만 영어의 H처럼 표기했다. 이를 두고 일부 한글학자들은 “국새가 국가를 상징하는 게 아니라 국가를 망신시키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민씨는 제작 당시 “‘국’자에 힘을 받쳐주기 위하여 두 획처럼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논란이 쉽게 가라앉지 않자 행안부는 그간의 공모와 심사선정, 자문위원회의 협의 과정을 종합해 1획으로 보아야 한다고 정리했다. 다만 작가의 창작성도 존중하고 2획으로 보이는 점도 보완하기 위해 ‘ㄱ’의 약간 솟아있는 부분을 완화해 수정키로 하고 더 이상 국새의 글자 획수에 대한 문제는 논의하지 않기로 했으나 주먹구구식 대처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⑤알맹이 없는 국새 백서
국새 백서 중 제작 과정을 기록한 내용은 전체 225쪽 중 8쪽에 불과하다. 그마저 국새에 대한 설명 및 사진, 민씨 사진 등으로 채워져 합금 비율, 전통가마 제작 방식, 거푸집 제작 과정 등은 누락돼 있다.
행안부의 의뢰로 국새 제작과정을 조사한 국립민속박물관 관계자는 “20여 차례 민씨 작업실을 방문했으나 민씨가 국새 제작과정은 비밀이라며 공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통기법 제작 사실을 확인할 근거가 없으니 백서 내용이 부실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민씨가 국새를 만들면서 한국주물학회로부터 주물틀을 임대한 영수증이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민씨는 “현장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백서를 작성한 것으로 내용을 인정할 수 없다”고 맞서 이 역시 수사과정에서 풀어야 할 미스터리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