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황주리] 광화문 연가
입력 2010-08-31 18:50
나는 서울 종로구 내수동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지금의 ‘경희궁의 아침’ 자리이다. 수송초등학교를 1학년 2학기까지 다니다가 2학년 때 사립인 경복초등학교로 전학을 했다.
학교를 옮긴 뒤 금방 눈에 띄는 것은 아이들의 도시락 반찬이었다. 김치만 싸오는 아이들이 대부분인, 그중에는 점심을 굶는 아이들도 있었던 공립학교 아이들의 도시락 반찬에 비해 우리들의 도시락은 화려했다. 달걀부침과 소시지와 멸치 볶음 등이 일반적이었지만, 진짜 부잣집 아이들의 도시락은 하루는 카레라이스, 오므라이스나 불고기덮밥 등등 구경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아주 추운 겨울날에도 스팀이 펑펑 나오는 교실의 한쪽 구석에는 스팀 위에 올려놓은 따뜻한 도시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분명 그 훌륭한 도시락을 먹고 자란 아이들이 김치만 싸오던 아이들보다 더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지는 못하다. 어쨌든 도시락 먹는 낙을 뺀다면 우리의 그 길고 길었던 학교생활에는 도대체 뭐가 남을까?
몇 해 전 전시회를 열고 있던 내게 누군가 편지를 한 장 남겼다. 그 편지에는 이렇게 씌어있었다. “내가 그 화가의 이름을 접한 것은 초등학교 때였다. 물론 당시 그 화가도 초등학생이었다. 방학 때 부산 외가에 갔다가 이모가 ‘새 소년’이라는 잡지를 한 권 사주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닳도록 본 기억이 난다. 그 속의 기사 중에 서울에는 리라국민학교라는 이상한 이름의 학교가 있다는 것과 황주리라는 이름도 이상한, 그림 잘 그리는 여자아이가 다닌다는 소식이 실려 있었던 것이다.”
그 편지를 받고 나는 무척 반가웠다. ‘새소년’을 읽고 자란 내 또래의 사람이 아직도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는 반가움이 앞섰다. 아마도 그는 경복초등학교를 리라초등학교로 착각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집에서 통의동에 위치한 우리 학교에 가려면 광화문을 꼭 보면서 지나가야했다. 요즘 그 오래된 베일을 벗고 거듭난 광화문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낯설면서도 낯익은 그 자리가 옛날 그 시간에 대한 감흥과 추억을 일깨운다.
광화문 길을 지나다니던 우리 동창들은 오십이 넘은 지금도 가끔 만난다 그들 중 누군가는 대기업의 사장이 되었거나, 어제 아침 갑자기 명예퇴직을 한 친구도 있다. 하는 일마다 잘 되지 않아 백수가 된 지 오랜 친구도 있다.
요즘은 거의 매일 누군가의 결혼식이나 장례식 소식이 들려온다. 동창들의 자제들이 성장해서 어느새 다퉈가며 결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부모님들이 한 분 두 분 세상을 떠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살다보면 어느새 우리들도 하나 둘 세상을 떠나가는 시간이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사라지고 다시 몇 번을 거듭 태어나도, 광화문은 그 자리에 영원할 것이다. 반가운 새 얼굴을 보여준 광화문을 한 발자국씩 아쉬운 마음으로 지나가며,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애틋한 지금 이 시간의 눈금을 새긴다. 어느새 9월이다.
황주리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