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뭇한 멜로! 행복한 다큐!… 다큐와 픽션의 하모니 ‘페이퍼 하트’ 개봉
입력 2010-08-31 17:29
사랑을 믿지 않는 여자가 남자와 연애를 시작하며 진실한 사랑에 눈을 뜬다. 달리 예상할 것도 새로울 것도 없는 진부한 이야기. 여기에다 ‘사랑’이 무엇인지에 관해 갑남을녀가 덧붙이는, 별로 창의적이랄 것도 없는 해석들까지 펼쳐진다. 그러나 이 영화 ‘페이퍼 하트’는 처음부터 끝까지 신선함으로 가득 찬 영화다.
100개의 사랑이 있으면 100가지의 서로 다른 사연이 있는 법. 흔한 소재와 진부한 결말에도 불구하고 ‘페이퍼 하트’의 매력을 담보하는 것은 다큐멘터리와 픽션을 교묘히 오가는 형식의 파격이다. 영리하게 상투성을 벗어난 영화는 진실의 외피를 쓰고 관객에게 접근한다.
코미디언 샬린은 이제껏 제대로 연애를 해본 적도 없고, 사랑을 믿지도 않는 숙맥이다. 그녀는 사랑이 무엇인지 정의내리기 위한 다큐멘터리를 찍기로 하고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인터뷰한다. 촬영 과정에서 그녀와 알게 된 배우 마이클이 호감을 느끼고 다가오지만, 다큐멘터리팀은 마이클과 샬린의 데이트 장면까지 모조리 찍어야 한다며 압박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마이클은 그녀의 옆을 지키는 것에 심리적 부담감을 드러낸다.
놀이터의 어린이부터 과학자까지를 망라한 인터뷰이들이 말하는 사랑의 정의는 진솔한데다 유머러스하다. 촬영팀의 모습까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카메라에 이르면 이 이야기가 ‘진짜’ 다큐멘터리 영화가 아닌가 느껴질 정도. 하지만 여주인공 샬린과 남주인공 마이클 세라 모두 캐스팅된 배우로 각본에 따라 연기했다. 그렇다고 완전한 페이크(fake) 다큐(다큐멘터리를 가장한 극 영화)도 아니다. 마이크를 들고 다니며 샬린이 보고 들은 이야기는 모두 진짜이기 때문이다. 어디까지 진실이고 어디부터 픽션인지 알기 힘든 영화 속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어느덧 관객들도 샬린처럼 홀연 나타났다 사라진 사랑의 여운에 젖게 된다. 지난해 선댄스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페이퍼 하트’는 현실적이고도 예쁜 사랑 영화가 만들어지는 데 꼭 선남선녀가 필요한 건 아니라고 말하는 ‘착한’ 영화이기도 하다. 우정 출연한 ‘테이킹 우드스탁’의 주인공 드미트리 마틴의 입을 빌려 영화는 샬린에게, 샬린을 보는 관객 모두에게 말한다. “넌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아이야.” 그 아이가 남자같이 괄괄한데다, 키가 크거나 날씬하거나 아름답지 않더라도 말이다. 2일 개봉.
양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