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가 오랜만에 여주인공 원톱 흥행몰이
입력 2010-08-31 17:28
‘악마를 보았다’ ‘아저씨’ ‘이끼’ 등 여름내 남성 중심의 거칠고 난폭한 영화에 밀려 사라졌던 여주인공들이 가을에는 대거 스크린으로 돌아온다. 스릴러나 공포, 액션 영화 일색이던 종류도 달라진 계절을 반영하듯 다소나마 선택폭이 넓어졌다.
우선 눈길을 끄는 영화는 오는 16일 개봉하는 김태희 주연의 ‘그랑프리’. 사고로 의욕을 잃은 여기수가 정신적으로 재기한 뒤 그랑프리 대회에 출전한다는 내용이다. 김태희는 영화 촬영을 위해 프로에 버금가는 승마 실력을 연마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충무로의 여주인공 실종 현상을 김태희가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릴 수 있을지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김태희는 ‘중천’ ‘싸움’ 등 출연하는 영화마다 쓴맛을 봤지만 지난해 안방 극장에서 화제를 몰고 온 드라마 ‘아이리스’의 성공이 어떤 영향을 미칠 수 것인가도 관심거리다.
선 굵은 액션 영화로는 동명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실사화한 자오웨이(趙薇) 주연의 ‘뮬란-전사의 귀환’이 있다. 아버지를 대신해 남자로 변장한 뒤 전쟁에 나선 뮬란이 무공을 세워 장군이 되는 과정을 다뤘다. 여성스러움과 귀여움을 완전히 버린 자오웨이와 악역을 맡은 후준(胡軍)의 연기가 눈에 띈다. 컴퓨터그래픽없이 대규모 인력을 동원해 찍은 전쟁 장면도 볼 만하지만, 영웅 뮬란의 활약보다는 신선하지도 않은 로맨스에 초점을 맞춘 게 아쉽다.
여성 관객이라면 미국 코미디언 샬린 이가 주연한 ‘페이퍼 하트’와 3일 개봉하는 줄리아 로버츠의 복귀작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 눈길이 갈 듯. 그 중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는 삶에 지친 여성이 미국과 이탈리아, 인도, 인도네시아 발리 등 4개국을 돌며 자아를 찾는 여정을 그린 영화다. “‘에린 브로코비치’를 능가하는 줄리아 로버츠의 대표작”이라는 홍보가 꼭 거짓으로 느껴지지는 않을 만큼 영화 속 로버츠는 매력적이고, 네 나라의 풍광도 아름답다.
‘맘마미아’로 혜성처럼 등장했던 아만다 세이프리드 주연의 ‘레터스 투 줄리엣’, 크리스티나 리치의 미스터리 영화 ‘애프터 라이프’도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클래식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의 인기를 등에 업고 제작된 ‘노다메 칸타빌레 Vo1. 1’의 우에노 주리도 올 가을 주목받는 여배우 중 하나.
여배우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가 많아지는 건 가을 영화 시장의 특색이기도 하지만 드라마·멜로 영화 팬들에게는 반가운 현상이다. 특히 톱스타를 내세운 외화들의 선전은 지난해 ‘추격자’의 성공 이후 로맨틱코미디와 멜로가 실종되다시피 한 충무로에도 자극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배우를 원톱으로 내세운 영화들이 흥행에 성공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올 들어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차지한 ‘인셉션’ ‘의형제’ ‘아저씨’ 등 스릴러물의 여배우들은 영화 속에서 그저 보조적인 역할에 머물렀다. ‘시’(윤정희), ‘베스트셀러’(엄정화),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이나영) 등 여주인공을 내세운 기대작들이 흥행에서 참패했다. 김윤진 주연의 ‘하모니’(300만명)와 전도연의 ‘하녀’(220만명) 정도가 눈에 띌 뿐이다.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