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년 전 ‘학봉장군’ 민물고기회 즐겨먹어

입력 2010-08-30 18:42

2004년 대전 목달동 인근에서 발견된 국내 최고(最古) 미라인 ‘학봉장군’ 부부의 생활상이 밝혀졌다. 부부는 육류와 채소가 고루 섞인 균형있는 식사를 했고 하인들이 잡아 온 민물고기 회를 즐겨 먹었다.

학봉장군 미라 조사·분석 작업에 참여한 정광호 박사는 30일 발표한 고려대 박사학위 논문 ‘학봉장군 부부미라의 고병리학적 분석’을 통해 조선 초 이들 부부의 삶을 생생히 전했다.

학봉장군은 세종 2년인 1420년 전후 사대부 가문에서 태어났다. 키는 167㎝가 넘었고 턱수염과 콧수염이 발달한 외모였다. 부인은 1410년대 후반 출생했다. 부인은 반미라 상태로 발견돼 정확한 외모를 추정하기 어려웠다.

부부가 살던 마을은 소나무 참나무 팽나무와 국화가 울창했다. 도랑과 습지에서 잘 자라는 부들류 꽃도 화창하게 피어 있었다. 이 같은 사실은 부부의 식도와 직장 세척물에서 발견된 화분립(꽃가루 세포)을 근거로 추론했다.

부부의 장기 조직에서 간흡충란, 편충란이 다량 발견됐다. 모두 민물고기 회를 통해 감염되는 기생충이다. 장 내용물에는 육류, 채소류가 고루 남아 있었다.

학봉장군은 중증 폐질환(기관지 확장증)을 앓았고 42세(추정) 때인 1460년대 초반 겨울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자주 피를 토한 탓에 민간요법에 따라 죽기 직전까지 ‘포황(애기부들 꽃가루)’을 자주 달여 먹었다.

학봉부인은 가축·야생동물 배설물에서 나오는 렙토스피라균에 감염돼 유행성출혈열을 앓았다. 부인은 남편이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되기 전인 1470년쯤 53세(추정)로 생을 마감했다.

정 박사는 학봉장군 부부의 생활상을 밝혀내기 위해 X선, CT, MRI 등 영상의학 검사와 내시경·화분 검사, 방사성 탄소연대측정법, 치아 교모도 분석법 등을 활용했다. 미라 훼손을 막기 위해 부검은 실시하지 않았다.

사망 당시 연령은 남은 치아를 3차원 사진으로 재구성해 분석했고 사망연도는 탄소연대측정과 족보 분석에서 나온 결과를 종합해 추정했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