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성기철] 無信不立
입력 2010-08-30 17:38
논어에 나오는 얘기다. 자공(子貢)이 스승인 공자(孔子)에게 물었다. “선생님, 정치란 무엇입니까.” 공자는 “식(食) 병(兵) 신(信)”이라고 답했다. 경제, 군대, 믿음을 뜻한다. 이에 자공이 “그중 불가피하게 한 가지를 버려야 한다면 무엇을 가장 먼저 버려야 합니까”라고 되물었다. 공자는 병, 즉 군대를 꼽았다. 이어 자공이 “또 한 가지를 버려야 한다면 무얼 먼저 버려야 합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식, 즉 경제라고 했다. 그러면서 공자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모든 사람은 죽기 마련이다. 그러나 백성의 믿음을 잃으면 나라가 존립할 수 없다.”
‘무신불립(無信不立)’의 어원이다. 원래는 앞에 민(民)자가 들어 있으나 이렇게 생략해서 쓰곤 한다. 안보와 경제보다 나라에 대한 국민의 믿음이 더 중요하다는 공자의 가르침은 의미심장하다. 삼국지를 보면 유비가 북해 태수를 지낸 공융에게 무신불립을 인용하며 인간지사 믿음의 중요성을 언급한 대목이 나온다.
정치인만큼 무신불립이란 고사를 좋아하는 직업군이 있을까. 김영삼 전 대통령은 대도무문(大道無門)과 함께 이 고사를 신년휘호로 즐겨 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도 이를 자주 인용한다. 현직 정치인 중에도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 정우택 전 충북지사는 작년 말과 올해 초 세종시 원안 고수를 주장하며 한 목소리로 이 고사를 인용했다. 2008년 9월, 문희상 당시 국회부의장은 이명박 대통령 초청으로 청와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과거 정부에서 대통령 정무수석과 비서실장을 지내면서 무신불립을 절감했습니다. 국민의 신뢰를 잃으니까 백약이 무효더군요”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는 그저께 사퇴 기자회견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무신불립이라 했습니다. 국민의 믿음이 없으면, 신뢰를 잃으면 제가 총리직에 임명된다 해도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현실 인식만은 정확했다. 말 바꾸기를 밥 먹듯 하는 ‘양파 총리’라 불렸으니 국민들이 그에게 믿음을 줄 리 만무하다. 설령 국회에서 한나라당이 밀어주고,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는다 하더라도 ‘식물 총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청와대는 후임 총리감으로 공정한 사회를 구현하는 데 앞장설 수 있는 사람을 고를 것이라고 한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인물을 찾는 일이다.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