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흥우] 신정아 효과

입력 2010-08-30 17:38


얼마 전 인터넷 검색순위 1위에 신정아씨가 올랐다. 그가 한 월간지와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 누리꾼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모양이다. 학력위조 파문에다 고위 공직자와의 부적절한 관계로 온 사회를 들쑤셔놓았던 장본인이 3년간의 긴 침묵을 깨고 입을 연 것이니 폭발적 관심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신씨는 인터뷰에서 “신정아라는 이름 앞에 항상 학력위조라는 수식어가 붙어있고, 정확한 내용도 모르면서 온갖 추측과 억측으로 파렴치하고 더러운 인간으로 치부하는 게 제 개인적으로 많이 아프고 다친 부분이었다”고 했다. 억울하다는 하소연이다. 그러면서 법원이 유죄로 인정한 학력위조 혐의까지 부인하며 ‘학력위조만큼은 없었다’고 결백을 주장했다. 리포트를 제출할 때, 논문을 쓸 때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등의 불성실한 방법으로 학위를 취득하긴 했으나 학력을 위조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며칠 뒤. 이번엔 산악인 오은선씨가 누리꾼들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그의 여성 세계 최초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완등 기록에 의문을 제기한 이후다. ‘정상의 증거는 신만이 아는가-오은선 칸첸중가 등정의 진실’ 프로그램을 보면 석연치 않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프로그램을 통해 오씨가 칸첸중가 등정을 인정받기 위해 히말라야 등정 인정 권위자인 엘리자베스 홀리의 말을 왜곡했고, 여러 차례 말을 바꾼 정황이 드러났다.

오씨는 “제기된 의혹 중 새로운 사실은 하나도 없다”며 보도 내용을 일축했다. 더욱이 “정상 등정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대한산악연맹이 내린 결론마저 “연맹의 의견일 뿐, 공신력을 믿을 수 없다”며 무시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는 문제가 된 칸첸중가 등정을 증명할 어떠한 증거도 지금까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신정아 사건은 허점투성이인 우리 사회의 검증 시스템을 되돌아보는 출발점이 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학력 검증 바람이 거세게 불었고, 상당수 유명인사들이 학력을 위조한 사실이 밝혀졌다. 지금도 인터넷에는 인기가수 타블로의 학력 위조 논란이 뜨겁다. 공인은 물론이고 연예인 등 대중 앞에 서려는 그 누구도 이제 사회적 검증을 피할 수 없는 세상이 됐다.

SBS가 시도한 칸첸중가 등정 검증은 팔은 안으로 굽을 수밖에 없는 국수적 접근방식에 대한 전환점으로 평가할 만하다. 오씨의 히말라야 14좌 완등 의혹은 칸첸중가 등반 직후부터 해외 언론을 중심으로 줄기차게 제기돼 왔다. 그러나 국민영웅을 굳이 흠집 낼 필요가 있느냐는 국수주의에 사로잡혀 국내 검증은 소홀했던 게 사실이다. 오씨를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세계 최초 여성 산악인으로 알고 있는 이는 우리 국민뿐이었다. 그의 기록은 국제적으로 “여전히 논란 중”인 상태다.

세대교체 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던 40대 김태호 총리 후보자가 국회 인사 청문회 벽을 넘지 못하고 후보직에서 물러났다.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아온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이재훈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도 동반 사퇴했다. 자진사퇴하기 전까지 한나라당은 “결정적 흠결은 없다”고 이들을 두둔했다. 그것으로도 부족해 신재민, 이재훈 두 후보자에 대해서는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인사청문경과보고서까지 채택했다.

기세등등하던 한나라당의 태도는 악화된 국민여론을 견디지 못하고 이들이 동반사퇴하자 돌변했다. 방금 전에 내뱉은 말은 까맣게 잊고 “어째서 문제 있는 후보자를 사전에 거르지 못했느냐”며 청와대 검증시스템을 탓하는 촌극을 벌이고 있다. 총리 후보와 두 명의 장관 후보 낙마를 부른 이번 청문회는 국민감정을 무시한 채 자신들의 잣대로 검증절차를 으레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쯤으로 여겼던 여당의 고정관념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신정아, 오은선, 김태호 사례를 겪으면서 공적 영역뿐 아니라 민간 차원에서도 검증 시스템이 발전적, 긍정적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흥우 인터넷뉴스부선임기자 hw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