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수의 영혼의약국(68)

입력 2010-08-30 09:32

자아의 중력권(gravity of ego)을 탈출하라

지구로부터 127만 광년 떨어진 거리에 태양과 같은 항성(HD10180)이 7개의 행성을 거느리고 있다는 사실이 독일 뮌헨의 유럽남부천문대가 발견했다고 합니다. 이들 모 항성과 행성의 거리가 지구와 태양의 거리보다 멀어 공전 주기는 600일 정도 된다고 합니다. 중력은 지구 질량의 28배 정도여서 마치 태양계의 혜왕성과 같다고 했습니다.

달이 지구 주위를 27.32일에 한 바퀴씩을 돌면서도 떨어지지 않는 이유와 아이들이 깡통에 구멍을 뚫어 불을 붙여 머리 위로 빙빙 돌릴 때 깡통에 든 불이 쏟아지지 않는 이유는 같습니다. 만약 우리가 널빤지 위에 야구공 하나를 올려놓고 굴리면 공은 공기저항이나 마찰에 의해 어느 순간 정지하게 됩니다. 그러면 마찰이나 공기저항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는 어떻게 될까요? 과학자들이 그런 상태로 야구공을 던져 보았더니 처음 1초에 4.9m를 이동했습니다. 그 다음 1초에는 그 배수인 9.8m, 그 다음 1초엔 14.7m, 이렇게 이동하는 것이었습니다. 공기의 저항이 없고 마찰이 없는 상태에서 모든 물체는 일정한 배율로 속도가 증가한다는 것을 알아냈어요. 이걸 우리가 ‘중력 가속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산술적인 값이 9.81m/s2입니다.

바닷물이 쏟아지지 않고 그대로 있는 이유, 지구 반대편의 사람이 밑으로 처박히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 ‘중력 가속도’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욥에게 물으셨던 대지를 떠받들고 있는 ‘기둥’이란 다름 아닌 중력이었던 것입니다.

어떤 물체가 운동을 하는 중에 지구에 떨어지지 않으려면, 아이의 숯불통의 길이가 80cm라고 할 때 2.8m/sec면 되고, 인공위성은 7.9km/sec만 되면 떨어지지 않고 돌게 되어 있습니다. 달은 38만 km나 떨어져 있으니 1.023/sec만 되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들의 인식 밖에서 이렇게 놀라운 재주를 펼쳐 보이시며, 우리들의 의식이 소유와 집착의 욕망 세계를 벗어나길 고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달은 왜 항상 한 쪽면만 보이는 것일까요? 그것은 달이 자신의 축을 중심으로 도는데 걸리는 시간과 지구 주위를 도는데 걸리는 시간, 즉 자전과 공전의 시간이 같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달의 세계에서는 ‘하루가 한 달이고, 한 달이 하루’인 셈입니다. 이 사실로부터 우리가 얻는 신학적인 힌트는 무엇일까요? ‘천년이 하루요 하루가 천년’이라는 계시록적인 이해입니다. 달의 신비에 비추어 본다면, 하루가 천년이 되고 천년이 하루가 되려면 어떤 자전과 공전 주기를 갖고 있으면 될까요? 그렇습니다. 스스로 도는데 천년이 걸리고, 같은 시간으로 모 항성을 도는데 1000년이 걸리는 행성에 살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초속 8km로 인공위성과 같은 물체를 수평으로 쏘아 올리면 지구의 중력에 의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과, 수직방향으로 로켓을 초속 11.2km로 쏘아 올리면 지구의 중력을 완전히 벗어난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일단 지구의 중력을 벗어나면 어떤 연료도 쓰지 않고 미끄러지듯이 달까지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하나님께 도달하는 거리가 아무리 멀다 해도 자아의 중력권을 탈출하면 은총에 이끌려 순식간에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진리가 여기에 숨겨 있는 것일까요?

달엔 중력 가속도가 지구에서처럼 초속 9.8m가 아니라 초속 1.6m입니다. 60kg의 사람이 10kg으로 줄어드는 것이니, 몸무게가 조금 많이 나간다고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지구상에서만 문제일 뿐입니다. 달엔 모두가 다 가벼울 뿐인데, 해가 뜨고 지는 데도 328시간이 걸리고, 열을 실어 나를 공기가 없으므로 밤엔 영하 110도에 이르고, 낮엔 온도가 120도까지 올라갑니다. 그런가 하면 나침반이 방위를 가리키지 못하기 때문에 철새들이 산다면 향방 없이 미친 것처럼 돌아쳐야 합니다. 그래서 영어로 정신병(psychoneurosis)을 ‘달빛에 쪼인 상태’라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가 홀로 하늘을 펴시며, 바다 물결을 밟으시며, 북두성과 삼성과 묘성과 남방의 밀실을 만드셨으며, 측량할 수 없는 클 일을, 셀 수 없는 기이한 일을 하셨다”(욥 9:8~10)

<춘천성암감리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