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랩’ 규제 강화 급하다

입력 2010-08-29 19:11


고객맞춤형 자산관리 계좌인 ‘랩어카운트(Wrap Account)’가 최근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면서 투자자 보호 규정을 정비하는 등 랩어카운트 관련 규제와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부 자문사들이 1000만원대 소액 투자자까지 앞다퉈 끌어들이면서 과장광고나 고위험 상품 투자 등의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데다 쏠림현상으로 주가 하락기 투자자들의 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학계에서는 우리보다 앞서 랩 붐을 경험했던 미국 금융감독 당국이 시행했던 규제를 참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랩어카운트 천하, 수익률은?=금융위원회 등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증권사들의 랩어카운트 계약 자산규모는 29조6990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말 20조원에서 7개월 만에 10조원이나 불어났다. 과거 자산관리사들이 자신을 직접 관리했던 일임형 랩이 인기를 끌었던 것과 달리 최근에는 고객이 자문을 받아 직접 투자하는 자문형 랩 실적도 지난해 3월 284억원에서 지난달 2조4289억원으로 폭증했다.

고액 자산가들을 대상으로 제공되는 서비스였지만 최소 1000만원대로 가입 금액이 떨어지면서 시중 자금이 모여들고 있기 때문이다. 코스피지수가 1700선에서 보합세를 보이면서 펀드 환매자금과 투자처를 찾지 못한 유동자금도 대거 랩으로 몰려들었다.

그렇다면 수익률은 어떨까. 대우증권의 경우 코스피 수익률을 상회한 자문형 랩은 9개 중 1개뿐이었다. 5개는 마이너스 누적 수익률을 기록했다. 홈페이지에 상품별 수익률을 게시하고 있는 하이투자증권도 12개 중 8개 상품이 코스피 수익률을 하회했다. 나머지 증권사들은 아예 상품 수익률 자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평균 수익률이 다른 증권사보다 낮을 수 있고 일부 상품은 시장수익률을 하회할 수도 있어 당장은 공개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미국형 규제 도입해야=전문가들은 과거 ‘펀드대란’처럼 주식시장이 하락세로 전환되는 시점에 랩 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에 따라 랩에도 미국처럼 공모펀드에 준하는 규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랩 판매업자는 물론 포트폴리오 매니저에게도 공시 의무를 부과하고 랩 투자자문업자의 등록을 의무화했다. 증권사는 랩의 운용뿐 아니라 성과보수 등 수수료 체계, 자문수수료 비율 등을 매년 고객에게 설명해야 하며 포트폴리오 매니저의 교체 및 평가기준 등을 공시해야 한다. 또 높은 성과보수를 노리고 고위험 상품에 투자하는 것을 막기 위해 수익률 산출 시 수수료가 미친 영향도 설명해야 한다.

임형준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거액 자산가의 자금관리 수단으로 성장한 랩어카운트가 소액투자자 보호에 한계를 드러내면서 미국의 경우 관련 규제와 감독이 강화되고 있다”면서 “공모펀드와 같은 공적 규제는 물론 엄격한 공시의무도 부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다음달 초 발표될 제도 개선 대책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금융당국은 ‘일대일 계약 상품’인 랩어카운트가 마치 펀드처럼 집단적으로 운용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